하응백 (문학평론가)
2014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거액의 상금이 걸린 한 신문사의 소설 공모전 심사를 하면서 한국 소설의 방향이 과거와는 상당히 다름을 실감한다. 기성문단의 작가들과는 달리 작가 지망생 혹은 젊은 작가들은 추리소설이나 역사적 소재를 가미한 팩션 소설 등 이른바 장르 소설에 상당히 경도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젊은 작가들의 경험 진폭이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 자체에서 소설의 소재를 찾아내기가 상당히 어려워진 것이다. 한편으로 기존의 문학적 기법에 의존하기보다는 영화적 상상력에 의해 창작에 임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심심찮게 관객 천만 명을 돌파하는 영화가 등장하다 보니 영화가 소설의 내적 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의외로 심각한 것이다. 심지어 영화적 상상력과 소설적 상상력을 구분 못 하고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도 많다. 소설은 독서 행위 중에 논리적 사고가 직접 개입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와는 달리 개연성을 생명으로 한다는 사실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문학은 활자 매체의 위축에 따라 서서히 그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진단이 아니다. 문학 혹은 활자매체의 몰락이나 출판시장 위축의 원인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농산물가격처럼 눈에 보이게 큰 진폭으로 널뛰기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문학 소비의 위축, 즉 독자층의 감소는 작가들이 설 기반을 잠식한다. 많이 읽어야 작가들도 신명이 나서 더욱 좋은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문학도 궁극적으로는 시장경제의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2014년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 조사한 바에 위하면, 책 소비의 연령별 분포는 산(山)자 형을 이루고 있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연령이 가장 많은 도서를 구입하고 그다음이 30대 초반과 40대 후반, 그다음이 20대와 50대이다. 20대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하더라도 이는 문학의 심각한 위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젊은 독자층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20대의 실업난과 낮은 구매력만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20대나 30대 초반 연령대가 통신비를 가장 많이 지출한다. 이 연령대가 영화도 제일 많이 본다.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독서 시장 혹은 문학의 소비층으로의 인구 유입 감소의 가장 큰 이유는 젊은 세대가 문학이나 책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많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스마트 폰을 활용하여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나 카툰을 보고 음악을 듣고 SNS를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재미있는 일이다. 영화를 보는 것 또한 더 재미있는 일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아날로그가 디지털에 패배했다.
문제는 문학이 영화나 스마트 폰에 패배해도 되는가 하는 점이다. 거대 자본이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영화나 스마트 폰의 콘텐츠는 영혼 없이 질주하는 폭주 열차와도 같다. 자본의 논리만이 이 열차를 달리게 하는 동력원이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의 문제, 당위성의 문제, 개인 혹은 집단의 정체성이나 방향성의 문제는 하위 개념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그런 문제를 고민하고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이냐의 문제가 늘 상위 개념이다. 역설적으로 물신성(物神性)이 팽배하면 할수록 문학은 여기에 저항하며 인간 고유의 정신을 고양(高揚)하여야 한다. 때로는 폭주 열차에 제동을 걸기도 하고, 때로는 그 열차에 편승해서 더욱 문학적인 콘텐츠를 제공하여야 한다.
문학의 융성은 출판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2014년의 경우 여러 원인에 의해 국내 출판시장은 상당히 위축되었다. 더불어 문학도서의 발간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문학도서 발간의 위축이 2014년 한 해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진행되는 현재형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학이 민간 시장 내에서 자율적으로 융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각 지역의 문화재단은 보다 공공적인 성격을 가진 사업에 매진해야 하겠지만, 문학 위축의 현실을 감안할 때 개별적인 지원사업도 강구해야 하는 실정으로 판단된다.
또한 오래도록 잡지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한국문학을, 매체의 변화에 따라 우수 문학 웹진 공모사업 등의 형태로 전개할 필요성도 있어 보인다. 많은 젊은 독자층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사용에 별 불편함이 없는 현시점에서 종이 잡지의 가독성과 웹진의 확산성이 상호 결합된, 민간 영역에서 주도하는 웹진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웹진에 대한 지원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면, 젊은 독자층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도 있으며 궁극적으로 문학의 저변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새로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학이 새로운 형태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여러 지원 사업들이 많은 문인이 좋은 글을 쓰는 데, 그리고 그 글이 좋은 독자를 만나고, 독자층을 형성하는 데, 큰 ‘효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 한국 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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