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루나의 시간
4시 47분이다. 잠에 깨어 마당으로 나갔다. 멀리서 소쩍새가 운다. 정밀한 야음을 타고 그 음색이 선명하게 전해온다. 동남쪽 하늘 위에 겨울철 별자리라고 하는 오리온좌가 물에 씻어 걸어놓은 듯 빛난다. 공기는 차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천지사방에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찰랑찰랑 수면을 이루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풀벌레의 울음 방울이 발목을 적실 것만 같다. 정동쪽에서 샛별이 맑게 빛난다.
오지 않은 잠을 연장하려고 침대에서 뒤척이느니 새벽 공기나 쐬자고 한 것이 이렇게 정밀한 순간과 대면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인터넷에서 쓰는 '아루나'라는 닉네임이 바로 이러한 시간을 두고 이르는 말이라 했다.
붓다가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한 것은 밤의 마지막 시각,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기 전의 짧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산스크리트 어로 '아루나'라고 불리는 그 시간은 '붉은 기운을 띤' 또는 '새벽'이라는 뜻을 갖는다. 경전에서는 '샛별이 돋을 때'로 한역되기도 한다. (중략) 샛별이 눈부시게 떠오른 이른 새벽.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새벽은 미처 찾아오지 않은 시간, 하늘은 청옥빛을 띠며 점점 깊어져 바닥없는 투명함을 지닌다. 이제 곧 새들이 깨어날 것이다. 밤의 주인들은 침묵을 지킨다. 바로 이러한 정적 속에서 한 육신이 영혼의 눈뜸에 이끌려 빛을 점화한다. 세계가 알에서 깨어난다. 태초의 아침, 빛과 어둠이 나뉜 창세의 첫날과 같은 開眼의 시간. [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에서
이 글을 쓰는 시간 어둠은 더 엷어졌다. 그렇다고 그 신성하고 영적인 기운이 엷어진 것은 아니다. 온갖 더러운 잡념으로 얼룩으로 더께가 진 내 심중의 오탁이 싹 씻긴 듯 개운하다. 천지 사위가 무문관처럼 고요하다. 깊은 산사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이러한 아루나의 시간을 나는 경험하고 있다. 내가 잠시라도 이렇게 맑고 깨끗해질 수 있다니, 내가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높아질 수 있다니, 정체 모를 나에게 이끌려 허덕이던 내가 이렇게 저 투명한 우주의 기운과 하나가 될 수 있다니 새삼 내 안의 신성에 내가 놀란다. 때 아닌 자존감에 살이 떨린다. 잠깐일지라도 아루나의 시간을 온전히 경험해본다.
2009년 9월 2일 새벽 다섯시 25분을 지난다.
- 복효근 시인님 블로그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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