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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큼한 군자란 - 이규자

moon향 2014. 12. 19. 12:01

엉큼한 군자란

 

 

한 번도 꽃을 피운 적이 없었지

십여 년을 그렇게

 

햇살 가득한 어느 봄날

너의 튼실한 잎사귀마저 눈에 거슬렸어

화분에 물을 주며

이번 이사 갈 때는 버리고 갈 거라고 말했지

제구실을 못한다고

입에 가시를 달고 콕콕 찔렀지

해마다 잘 피는 꽃들을 들먹이면서

 

그 소리를 들은 것일까

얼마 후

화분에 꽃대가 부러지도록 꽃망울이 맺혔어

부러질까 품에 안고 이사를 했지

미안함이란 연고를 발라서

 

새집에 온 후, 보란 듯 활짝 피었지

낯선 집을 지켜주며

보상이라도 하듯 늦도록 봄을 밝혔어

 

분명, 너는

귀 닫고 사는 내 남편을 닮은 게야

필요한 말만 알아듣는

엉큼한 군자란

 

 

 

 

- '이규자의 세상사는 이야기' 블로그에서 펌 (http://blog.daum.net/lkj5671/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