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오래된 기도 - 이문재

moon향 2015. 2. 27. 10:59

 

 

  오래된 기도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시집『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2014)

 

 

  Anton Romako

 안톤 로마코는 1832년 비엔나의 아츠거스도르프(Atzgersdorf)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요셉 레퍼(Josef Lepper)의 아들로 태어났다. 로마코의 어머니는 하녀 엘리자베트 마리아 안나 로마코였다.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의 성을 따라 안톤 로마코가 되었다. 그는 15세 때에 비엔나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였으나 그의 선생인 페르디난트 게오르그 봘트뮐러는 로마코가 미술에 대한 재능이 없다고 판단하여 다른 직업을 고려해 보라고 권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코는 미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1862년 로마코는 로마에서 건축가인 칼 쾨벨(Karl Koebel)의 딸인 조피(Sophie)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시대와 사람들에게 적응하지 못했다. 1887년 그의 두 딸인 마틸데와 마리아가 동반자살을 했다. 로마코는 충격으로부터 결코 회복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그는 비엔나 근교에서 살면서 마치 폐인처럼 은둔생활을 했다. 그는 두 딸이 자살한지 2년후인 1889년 빈곤 중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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