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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긴 동시??) - 실비아 플라스

moon향 2015. 2. 25. 13:15

 

침대 이야기


 

                        ㅡ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온갖 크기의 침대들이 있어

1인용이나 2인용

어린이용 침대나 아기용 요람

대형 침대나 침대 밑으로 들어가는 꼬마 침대도 있어


침대란 침대는 모두

잠자거나 쉬는 곳

하지만 가장 좋은 침대는

조금 더 재밌는 침대!


그냥 하얀 침대

이불자락을 꼭꼭 여민 침대

잠만 자는 침대

머리맡에 불 꺼진 침대만 아니면 되지


그러니까

낚시하는 침대,

고양이 침대,

곡마단 침대 같은 것


진짜 '제대로 된 침대'는

(내 말뜻을 알아주면 좋을 텐데)

잠수함도 될 수 있는

그런 침대야


맑고 푸른

물 속을 헤쳐 나가는 침대,

한 마리 정어리처럼

은빛으로 반짝이는 침대


아니면 제트기 침대

별을 따 넣을

그물주머니가 달린

화성에도 갈 수 있는 침대야


캄캄한 한밤중에

배가 고파오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간식 침대도 좋아


빵으로 된 베개를

조금씩 뜯어먹어도 되고

머리맡에는 자판기가 달린

그런 침대 말이야


동전을 넣을 필요는 없어

그저 손가락 하나를

구멍에 찔러 넣기만 하면

케이크와 차게 식힌 닭고기가 나오지


모두가 좋아하는

또 다른 침대는

맘대로 더럽혀도 좋은

그런 침대야


이불에 검정 파랑 분홍

온갖 얼룩이 나 있어서

잉크를 엎질러도

아무도 모를 그런 침대


아니면 개나 고양이나

잉꼬가 이불 위에서 흙투성이가 된

발로 춤을 춘다 해도

아무도 모를 그런 침대


맘대로 더럽혀도 좋은 침대에선

잼이 어디에 얼룩지든

물감이 어디로 튀든

아무래도 상관없거든!


그리고 한편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면

탱크 침대야말로

환영을 받겠지


탱크 침대엔 크랭크와

바퀴와 톱니가 붙어 있고

늪에 빠질 경우에 대비해

잡아당길 지레도 달려 있어


탱크 침대는 사방을 돌아다니고

위로 올라가거나 내려오기도 하고

연못 속으로 자맥질을 하거나

자갈 깔린 마을길도 돌아다니지


비가 오거나 우박이 쏟아지면

포근하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탱크 침대에 없는 거라곤

딱 하나 돛뿐이야!


좀 더 고상한 침대는

새를 관찰하는 이들이

아주아주 좋아하는 그런 침대야


키 큰 나무 두 그루 사이에

매어놓은 해먹 같은 침대,

거기에서라면

편안하게 그네를 탈 수 있지


그리고 새들을 모두 헤아리는 거야.

굴뚝새며 울새며 띠까마귀들.

이름을 쓰는 공책에다

새 이름을 적는 거야


새들을 관찰하는 침대 주위에는

밀짚 보금자리도 매달 수 있어

벌새와 후투티,

마코앵무새들을 위해서 말이야


온갖 새들이 모여들 거야

(내 생각이 맞는다면)

낱알과 버찌,

베이컨 조각을 먹으러 말이야


물론 이런 침대는

모두 접을 수도 없고

가지고 다니기도

힘든 게 사실이야


그래서 주머니 침대를

갖고 있으면 좋겠지

친구 짐이나 조안 아줌마와

야외에서 식사라도 할 때 말이야


사람들은 말하지.

밤새도록 밖에 있을 수 없다니

정말 불편하군.

적당한 침대가 없으니 말이야


그러면 완두콩만하게

줄어든 네 침대를 꺼내

적당한 크기가 될 때까지

물을 줘서 자라게 하는 거야


주머니 침대라면

정말 훌륭할 거야

다만 확신할 수 있어야 해

장담할 수 있어야 해


침대에서 잠든 동안

침대가 다시 완두콩만하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걸 말이야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


자, 여기에

줄어들지 않는 침대,

물에 뜨는 배 같은

침대가 있지!


코끼리 침대에 올라가면

어디든 맘대로 갈 수 있어

나무에서 직접

바나나를 딸 수도 있고


혹시 네 재채기 소리를 듣고

호랑이가 펄쩍 뛰어오른다 해도

코끼리 무릎보다

더 높이 뛰지는 못할 거야


코끼리 침대는

임금님이나 타고 다니는 것

그늘진 안쪽은

수영장만큼이나 시원하지


코끼리 코를 타고 올라가고

엉덩이를 타고 내려오면 돼

코끼리가 화내지 않는다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이잖아!


남아프리카 호텐토트 사람도

못 견딜 정도로 더울 때면

코끼리 코를 가지고

그 자리에서 샤워도 할 수 있어


하지만 아주 추울 때라면

북극 침대가

내가 아는 것 중

제일 좋은 침대야


높이 쌓인 눈 속에서도

그 침대는 아주 아늑하지

에스키모 침대만큼

따뜻하다니까


북극 침대는

털로 되어 있어

탐험가에겐

꼭 어울린다네


감기에 걸려

코가 맹맹하다면

침대에 딸린 난로에

두 발을 녹일 수도 있어


침대가 크든 작든

누가 신경 쓰겠어

딱딱하든 울퉁불퉁하든

아무래도 상관없지


용수철이 새것이고

힘이 세기만 하다면 말이야

튀어오르는 침대에서는

푸른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어


접시꽃 무리를 넘어서

(이런, 미안해!)

후우후우 울고 있는

올빼미들도 넘어서


달을 넘어서

서아프리카 팀북투까지 가는 거야

캥거루보다 더 높이 튀어오르는

용수철만 달렸다면


국이 가득 담긴

북두칠성 국자도 보고

한 주일이나 두 주일쯤

밤을 새우고 싶을 수도 있잖아


이런 침대들이야말로

우리를 위한 것들이야!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쓸 침대야


주머니 침대,

간식 침대,

탱크 침대,

코끼리 침대,


날아다니는 침대,

잠수하는 침대,

튀어오르는 침대,

더럽혀도 좋은 침대,


새들은 관찰하는 침대,

추운 날씨에 어울리는 침대...

어떤 종류의 침대라도 좋아

특별할수록 더욱 좋아


색다르기만 하다면

놀라움으로 가득하다면...

모양과 크기가

다른 것들과 다르다면


그냥 하얀 침대

이불자락을 꼭꼭 여민 침대

잠만 자는 침대

머리맡에 불 꺼진 침대만 아니면 되는 거야!


 

 

    

영국 계관 시인 테드 휴즈(1930~1998)의 부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의 묘

스스로 생을 끊은 그녀에게 남편이 고른 묘비명은 산스크리트어로 

'격렬히 타오르는 불길 속이라 해도  황금빛 연꽃은 심겨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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