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권이탈지역
고형렬(1954~ )
문득, 통화권이탈지역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소란한 세상을 닫아건 잎들의 무늬를 읽는다
그대 잠시 두리번, 결락된 감각을 찾는가
소리 없이 엽록체의 통화권이탈지역은
동물들의 울음과 이동이 찍히지 않는 영토
이 영역은 우리에게 불가침지역에 해당하며,
소통의 소란은 작은 묵상도 헝클어놓는다
나는 주머니 속의 열쇠를 저 밖으로 던진다
고리가 열리고 날개가 파닥이면 나는 그제사
그들의 이름을 부를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리보솜의 머나먼 기억에서 사라진다
산을 식물보호권역 개념으로 집약한다는
뜻밖의 기층 속에서, 영역 밖을 내다본다
서 있는 그림자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손바닥의 무언가에 얼굴을 묻고 엿듣고 섰다
나는 이제, 독특한 통화권이탈지역을 갖는다
여기서 그 모든 분란의 소통은 차단되었다
빛은 떠나고, 혼돈이 거니는 어둠 한쪽
완전 통화권이탈지역에서 너와 나는 오래전
서로 잃어버린 것을 조용히 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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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이든 아니든 ‘통화권이탈지역’으로 들고 말 때가 있다. 얼마 전까지 전부였던 세상과 단절된 세계로의 이탈은 분명 당황스럽고 혼돈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곳에서 “소란한 세상을 닫아건 잎들의 무늬를 읽”고 “결락된 감각을 찾”는다. 그리고 이 영역을 불가침지역에 해당하는 곳이라며 주머니 속에 든 세상으로 나가는 열쇠를 내던진다. 그럼으로써 독특한 통화권이탈지역을 갖게 되었다고 그리고 오래전 잃어버린 것을 조용히 만지고 있다고 말한다. 몇 해 전 그간의 번잡하고 소란한 세상을 접고 통화권이탈지역으로 들어간 시인의 삶이 이럴 것이다. 그리운 사람 고형렬.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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