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포클레인 - 최금진

moon향 2014. 12. 29. 08:48

 

 

 

포클레인

 

                                    - 최금진

 

 

비포장도로를 질주하기엔 알맞은 어둠이야

해골 같은 얼굴로, 정치를 말하고, 예쁜 척하는

헤헤헤 탈바가지처럼 웃는 TV와 태양을 갈아엎겠어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런 극단적 명쾌함이 나는 좋아

저녁까지 뻣뻣하게 힘이 들어간 내 손목의 힘줄이 좋아

한 삽 가득 퍼서 철푸덕, 너를 모욕하고 싶어

옥외광고에 나오는 너, 신문에 나오는 너

너는 신인가? 너는 왕인가?

무덤과 구덩이를 선물하고 싶어, 궤도열차들이 달리는 엽서

붉은 황토의 마을을 보여주고 싶어

놀란 뿌리들, 비밀을 들킨 바위들, 숨을 몰아쉬는 애벌레들

뭐든 갈아엎기에 딱 좋은 날이야, 지구에 구멍을 내고

거기다 너를 매장하고 쿡쿡 삽으로 다지고 싶어

입 다물고 일기나 쓰라고  지근지근 밟아주고 싶어

하늘의 뻥 뚫린 구멍, 거기로 올라가는

비상구를 닦고 신작로를 내겠어

모두들 저 위를 보시오, 커다란 왕주먹을 들어 공약하겠어

공사판에서, 싸움판에서, 굴러먹다가 깨달은 것

여긴 더 이상 파먹을 것이 없다, 건설하고 싶은 미래가 없다

그릉그릉 너 사는 세계를 바다 끝까지 몰고 가서 매립하겠어

자력구제의 힘을 기꺼이 발휘하겠어

턱이 가렵다, 하늘을 뜯어내고 그 뒤에 공터를 내겠다

공화국 청년들이여, 각진 입을 크게 벌리고

포클레인처럼 밀어붙이며 전진, 전진하라

 

 

 

- 《서정시학》 201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