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레인
- 최금진
비포장도로를 질주하기엔 알맞은 어둠이야
해골 같은 얼굴로, 정치를 말하고, 예쁜 척하는
헤헤헤 탈바가지처럼 웃는 TV와 태양을 갈아엎겠어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런 극단적 명쾌함이 나는 좋아
저녁까지 뻣뻣하게 힘이 들어간 내 손목의 힘줄이 좋아
한 삽 가득 퍼서 철푸덕, 너를 모욕하고 싶어
옥외광고에 나오는 너, 신문에 나오는 너
너는 신인가? 너는 왕인가?
무덤과 구덩이를 선물하고 싶어, 궤도열차들이 달리는 엽서
붉은 황토의 마을을 보여주고 싶어
놀란 뿌리들, 비밀을 들킨 바위들, 숨을 몰아쉬는 애벌레들
뭐든 갈아엎기에 딱 좋은 날이야, 지구에 구멍을 내고
거기다 너를 매장하고 쿡쿡 삽으로 다지고 싶어
입 다물고 일기나 쓰라고 지근지근 밟아주고 싶어
하늘의 뻥 뚫린 구멍, 거기로 올라가는
비상구를 닦고 신작로를 내겠어
모두들 저 위를 보시오, 커다란 왕주먹을 들어 공약하겠어
공사판에서, 싸움판에서, 굴러먹다가 깨달은 것
여긴 더 이상 파먹을 것이 없다, 건설하고 싶은 미래가 없다
그릉그릉 너 사는 세계를 바다 끝까지 몰고 가서 매립하겠어
자력구제의 힘을 기꺼이 발휘하겠어
턱이 가렵다, 하늘을 뜯어내고 그 뒤에 공터를 내겠다
공화국 청년들이여, 각진 입을 크게 벌리고
포클레인처럼 밀어붙이며 전진, 전진하라
- 《서정시학》 2014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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