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나는 이렇게 망했다 - 최금진

moon향 2014. 12. 29. 09:41

 

 

 

 

나는 이렇게 망했다

 

 

- 최금진

 

 

 

언제나 사람들은 내가 망하길 원했다

할 수만 있다면 몰래 발을 걸거나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하여, 나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불행해지기로 했다

똥과 구더기가 되기로 했다

실업자, 독신자, 떠돌이, 패가망신자, 빚쟁이

마침내 내가 길바닥에 나앉았을 때

사람들은 나의 보잘 것 없는 겸손함을 칭찬했다

와하하하, 웃으면서 나를 다정하게 사람으로 대해 주었다

내가 평범해지려는 욕심이라도 갖게 되면 어쩌나

근심하는 눈치로 내 몸통을 이리 저리 뒤집어 보았다

혹시라도 칼이나 수면제를 숨기고 있지 않을까 하는 표정이었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고 바른 말을 하거나

그럴 듯한 글을 써서 발표한다면 그들은 나를 경찰에 밀고할 것이다

피해망상, 열등감, 즐거운 자학 ……

나는 마침내 외톨이가 되었다, 입구가 무너져 내린

문을 닫고 기침을 하면서 초저녁에 잠을 잤다

나는 진심으로 불 꺼진 사람이 되고자 했다

간혹 사람들이 내 방문을 두드리곤 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건 아닐까, 어색한 근심을 하면서

사람들이 방문에 대고 험담과 충고를 한다

이봐, 힘을 내라구, 얼마나 좋은 세상인데 이러고 있나

지금이 어떤 세상이냐고?

모르겠다, 다만 저들은 나의 쾌유와 성공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조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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