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란계 - 윤동주
싸늘한 대리석 기둥에 목아지를 비틀어 맨 한란계
문득 들여다볼 수 있는 운명(運命)한 5척(尺) 6촌(寸)의 허리 가는 수은주
마음은 유리관보다 맑소이다.
혈관이 단조로워 신경질인 여론동물(輿論動物)
가끔 분수 같은 냉(冷) 침을 억지로 삼키기에
정력을 낭비합니다.
영하로 손구락질할 수돌네 방처럼 치운 겨울보다
해바라기 만발한 8월 교정이 이상곺소이다.
피 끓는 그날이―
어제는 막 소낙비가 퍼붓더니 오늘은 좋은 날씨올시다.
동저고리 바람에 언덕으로, 숲으로 하시구려―
이렇게 가만가만 혼자서 귓속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또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아마도 진실한 세기의 계절을 따라―
하늘만 보이는 울타리 안을 뛰쳐
역사 같은 포지션을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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