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화양연화 - 이병률

moon향 2014. 12. 1. 13:17

 

 

 

 

  화양연화(花樣年華)

 

 

                  - 이병률

 

 

  줄자와 연필이 놓여 있는 거리

  그 거리에 바람이 오면 경계가 서고

  묵직한 잡지 귀퉁이와 주전자 뚜껑 사이

  그 사이에 먼지가 앉으면 소식이 되는데

  뭐 하러 집기를 다 덜어내고 마음을 닫는가

 

  전파사와 미장원을 나누는 붉은 벽

  그 새로 담쟁이 넝쿨이 오르면 알몸의 고양이가 울고

  디스켓과 리모컨의 한 자 안 되는

  그 길에 선을 그으면 아이들이 뛰어노는데

  뭣 때문에 빛도 들어오지 않는 마음에다

  돌을 져 나르는가

 

  빈집과 새로 이사한 집 가운데 난 길

  그 길목에 눈을 뿌리면 발자국이 사라지고

  전봇대와 옥탑방 나란한 키를 따라

  비행기가 날면 새들이 내려와 둥지를 돌보건만

  무엇 하러 일 나갔다 일찌감치 되돌아와

  어둔 방 불도 켜지 않고

  퉁퉁 눈이 붓도록 울어쌌는가

 

 

  - 시집『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문학동네,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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