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가 따뜻해졌다 - 오인태 쓰고, 문학동네 펴냄
경남 함양 출신인 오인태 시인은 진주교육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1년 문예지 '녹두꽃'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첫 산문집『세상의 저녁을 따뜻하게 하는 시가 있는 밥상』으로 유명하다. 그의 동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세 편을 올립니다. 현재는 남해교육지원청 장학사라고 합니다.
돌멩이가 따뜻해졌다
학교 오가는 길 문방구 옆
대문도 없는 슬레이트 집 마당에 매여 있는
그 개는 나만 보면 왕왕 짖어댄다.
요놈의 똥개!
내가 만만하게 보이나보다.
안 그래도 나머지 공부 지겨워
학교 오기 싫은데
오늘은 짖어 대면
돌멩이로 때려 줄 테다.
나머지공부 마치고 교문을 나와
작은 돌멩이 하나 주워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차갑다.
그런데 이상하다.
똥개가 보이지 않는다.
개장수한테 팔려갔나 겨울인데?
병원 갔나 똥개 주제에?
한참 기웃거리다
그 집 지나오면서
자꾸만 뒤돌아본다.
돌멩이가 따뜻해졌다.
검은 비닐봉지 속
백화점 종이가방은
백화점을 나와서도
뻐기면서 걸어 다니고
재래시장 까만 비닐봉지는
집에 와서도
얼른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그래도 오늘 저녁
전등도 없는 우리 집
녹슨 가스버너엔
일 마친 할머니가
비닐봉지에 싸온
고등어가 환하게 끓고 있다.
돌멩이 밑
요것 좀 봐라.
조그만 돌멩이 밑에
지렁이 한 마리
노란 새싹 하나
몰래 살림을 차렸다.
누가 볼까 봐
얼른
돌멩이를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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