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브라이(Louis Braille) / 마가렛 데이비슨
몇 년 전에 동네 초등학교에서 빌려본 아동도서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얇은 책이지만, 이 책은 헬렌 켈러의 위인전을 보는 듯한 감동을 주었다. 사실은 헬렌 켈러도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루이 브라이가 만든 점자로 공부해 하버드 여자대학인 레드클리프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 루이 브라이가 없었다면, 헬렌 켈러는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저자 마가렛 데이비슨은 미국 출신으로 <루이 브라이>, <헬렌 켈러의 선생님> 등 30여 종의 책을 썼으며, 돌고래에 관한 최초의 과학 아동도서로 평가받고 있는 <돌고래 프리소일라>를 쓰기도 했다. 이 책으로 그녀는 미국아동도서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루이 브라이는 프랑스의 작은 꾸브레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시몬 브라이는 마구와 안장을 제작하는 분이었다. 그가 3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송곳으로 왼쪽 눈을 다쳤다. 이 사고로 왼쪽 눈이 멀었고, 오른쪽 눈까지 감염 되어 그만 시력을 잃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끝이 길고 가는 지팡이를 만들어 주었다. 지팡이로 앞을 스치듯 가볍게 더듬으며 걷는 법을 익혔다. 지팡이에 뭔가가 부딪히면 바로 멈추거나 옆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는 마을 성당의 자크 파뤼 신부님을 만나 읽고 쓰기를 배울 수 있었고, 마을 학교에도 입학하게 되었다. 그는 교과서를 읽을 수가 없기에 들은 것을 몽땅 외어야만 했다. 그는 작은 소리나 냄새, 촉감 등을 이용해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것들은 바로 책에 씌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10살 때 브라이는 신부님과 어느 후작님의 후원으로 파리의 왕립맹아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서의 삶은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았고, 그는 향수병에 시달렸으나 친구 가브리엘을 통해 힘을 얻었다. 학교 도서관에는 책이 14권밖에 없었으나, 그는 여러 과목의 공부와 작업, 그리고 악기 연주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그는 이제 파리 시내 여러 성당의 다른 종소리를 구분할 정도로 도시의 소리들을 가려 내기 시작했다.
당시에 맹인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은 종이 뒷면을 눌러 글자가 종이 위로 볼록 솟아오르게 하는 ‘돋을새김 인쇄’법으로 가능했는데, 그 방법은 글자를 구분하기도 어렵고 너무 느려서 책 한 권을 읽는 데 여러 달이 걸리는 일이었다. 1821년, 학교를 방문한 바르비에 대위는 그가 만든 "야간 문자"를 소개했다. 이는 전쟁터에서 컴컴한 밤에도 말하지 않고 비밀스런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브라이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간단한 내용을 전달하기엔 편리했으나, 긴 문장과 문장부호를 표현하기 힘들었기에, 이것으로 맹인을 위한 책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는 점으로 문자를 표시하는 방법을 궁리하는 데 더 깊이 빠져들었다. 바르비에 대위의 야간문자는 소리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 간단한 단어를 쓰는데도 점을 많이 찍어야 하는데, 그는 소리 대신 알파벳으로 글자를 나타내는 연구를 계속 했다. 아침식사 전, 쉬는 시간, 친구들이 잠든 시간에도 연구를 쉬지 않았다. 때로는 몸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손을 들어 올릴 수조차 없었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하였다. 그는 가끔 ‘성공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라고 친구 가브리엘에게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3년 동안의 연구 끝에 브라이는 새로운 점자를 만들었다. 여섯 개의 점으로 완성한 점자를 친구들에게 만져보게 하니, 손끝으로 한 번에 느낄 수 있도록 맹아들의 반응은 좋았다. 송곳에 찔려 맹인이 된 꼬마가 송곳 같은 점필로 점자를 만들어 냈다. 피녜 교장선생님은 여기저기 후원편지를 써서 15세 소년이 만든 점자에 대해 알렸으나, 당시 프랑스는 맹인문제에 무관심한 사회라서, 후원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브라이가 학교를 졸업할 즈음, 교장선생님은 그에게 학교 선생님이 되어 달라고 제안했다. 한 달에 15프랑밖에 되지 않는 월급이었으나, 그는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늘 친절했다. 그는 아무리 이해가 더디고 둔한 학생이라도 결코 비웃지 않고 부드럽게 대했다고 한다. 악기 연주에도 조예가 깊었던 브라이는 수학과 도 표현할 수 있는 점자를 확장하여 책으로도 출간하였다. 1847년에 최초로 ‘브라이 문자 인쇄기’가 만들어졌으나, 그가 창안한 점자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학교에서 가르치는 데 채택되지 않았다. 그는 늘 건강 문제로 시달렸으며, 1852년 결핵 때문에 43세의 나이로 숨졌다. 그가 죽은 지 6년 뒤, 미국에서 가장 먼저 그의 알파벳을 사용하였고, 그로부터 다시 30년 뒤에는 유럽의 모든 맹학교가 브라이 문자를 사용하였다. 100년 후 그의 유해는 프랑스 팡테옹 국립묘지에 옮겨져 안장되었다. 그의 유해가 파리로 운구되는 동안 파리 시 전체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프랑스 대통령과 헬렌 켈러도 운구행렬을 뒤따랐다고 한다.
눈 먼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일찍이 프랑스에서 꽃을 피워 전 세계에 퍼져 나가, 오늘날 맹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지식의 문을 넘어 지혜를 넓혀나가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글이 독특한 문자이기 때문에 누군가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새로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조선 말기에 ‘박두성‘ 선선생님이 제생원 맹아부( 현재 서울 맹아 학교 전신) 교사로 있으면서 1920년부터 한글점자연구를 시작하여 7년여의 노력 끝에 한글점자를 완성하여, 맹인들의 훈민정음이라는 뜻으로 <훈맹정음>이라고 불린다.
혼자만의 장애를 극복하기도 어려운데,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맹인들의 편리를 위해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Louis Braille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요~~~~~♥
어린이날에, 많이 부끄럽습니다! 사랑합니다!
moon향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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