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라면을 먹는 아침 - 함민복

moon향 2015. 11. 2. 08:44

 

 

 

라면을 먹는 아침  - 함민복

 

 

프로 가난자인 거지 앞에서
나의 가난을 자랑하기엔
나의 가난이 너무 가난하지만
신문지를 쫙 펼쳐놓고
더 많은 국물을 위해 소금을 풀어
라면을 먹는 아침
반찬이 노란 단무지 하나인 것 같지만
나의 식탁은 풍성하다
두루치기 일색인 정치면의 양념으로
팔팔 끓인 스포츠면 찌개에
밑반찬으로
씀바귀 맛 나는 상계동 철거 주민들의
눈물로 즉석 동치미를 담그면
매운 고추가 동동 뜬다 거기다가
똥누고 나니까 날아갈 것 같다는
변비약 아락실 아침 광고하는 여자의
젓가락처럼 쫙 벌린 허벅지를
자린고비로 쳐다보기까지 하면
나의 반찬은 너무 풍성해
신문지를 깔고 라면을 먹는 아침이면
매일 상다리가 부러진다.

 

 

시집 <우울氏의 一日>중에서 (세계사, 1990)

 

 

 

  함민복 시인은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 출생으로, 수도전기공고를 졸업한 후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간 근무하였다.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등을 발표하며 등단하고,1989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90년 이후 <우울氏의 一日>을 시작으로 <자본주의의 약속>,<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말랑말랑한 힘> 시집을 냈다. 첫 시집의 제목처럼 그는 자신을 '우울한 아저씨'로 비유한 것 같다. 시인에게 깊은 우울의 샘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우울을 시로 승화시킨 깊은 내공에 박수를 친다. 우울한 사람에게나 행복한 사람에게나 모두에게 평등한 음식은 바로 라면이 아닐까 싶다. 부자에게나 빈자에게나 한끼를 빠르고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일 테니. 나도 일주일에 한번은 라면을 먹는다. 스프를 절반만 넣어 물을 끓이다가 면을 넣고 계란을 두 개 풀고, 다진 마늘과 파를 더하면 영양면이 된다. 콩나물을 추가하면, 기름진 1인분이 담백한 2인분으로 변신한다. 

 

  '라면을 먹는 아침'에서는 '프로 가난자'라는 신조어가 등장한다. 언어의 마술사는 자신이 배고픈 글쟁이임을 부정하기 위한 까닭인지 라면도 못 먹고 있을 누구야말로 프로 가난자라고 칭하였다. 하지만 더 많은 국물을 위해 소금을 풀어 라면을 먹는 것이야말로 가난의 진수가 아닐까? <눈물은 왜 짠가>라는 그의 산문집에 설렁탕 집 일화詩가 나온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많이 먹으라며. 어머니는 주인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국물에 소금을 많이 풀어 짜니까 국물을 더 달라고...... 주인은 흔쾌히 그렇게 해주었다. 어머니는 자기 투가리에 담긴 국물을 아들에게 부어준다, 주인이 안 볼 때. 아들은 그만 하라며 어머니의 투가리를 친다. 주인은 깍두기 한 접시를 더 갖다준다, 모자의 모습을 못 본 척. 요즘 라면보다 '짜왕'이 대세다. 중국집 짜장면처럼 느끼하지 않고 면발이 쫄깃하다. 이 불황에 매일 상다리가 부러지는 집은 어디인가? 시인에게 짜왕 2개 끓여주고 싶다. - moon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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