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리 고....♡/문 화 계 소 식

서정주(徐廷柱)

moon향 2013. 10. 4. 11:35

서정주(徐廷柱)

 

 

 

 

호는 미당(未堂) "모국어의 연금술”이라고 할 수 있을 언어적 재능과 더불어

“우리말 시인 가운데 가장 큰 시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미당 서정주.

1915년에 탄생한 미당은 85년에 걸친 생애 동안,

1936년 등단 이후 무려 64년에 걸친 장구한 시작 생활을 통해서 900여 편의 시, 15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소리에 민감한 미당의 시는 외워서 입으로 소리내어 읊어야

비로소 그 깊은 맛과 청각적 이미지의 동적 아름다움을 전신의 갈피 갈피에서 음미할 수 있으며,

미당의 시는 그런 노력을 바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확신한다.”고 김화영 교수는 서정주 시인을 평한 바 있다.

 

(1915년~2000년) 전북 고창 출생.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김동인 등과 동인지인 시인부락을 창간하고 주간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첫 시집인 『화사집』에 이어『귀촉도』등에서 자기 성찰과 달관의 세계를 동양적이고 민족적인 정조로 노래하였고,

이후 불교 사상에 입각해 인간 구원을 시도한 『신라초』『동천』, 토속적이며 원시적인 샤머니즘을 노래한 『질마재 신화 』『떠돌이의 시』등을 발표하였다.

 

 

 

: 작품 읽기 :

 

 

화사 (花蛇)

 

 

麝香(사향) 薄荷(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어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達辯(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사향) 芳草(방초)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石油 (석유) 먹은 듯.. 石油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귀촉도(歸蜀途)」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메투리.

은장도(銀粧刀)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歸蜀途)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문둥이」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무등을 보며」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국화 옆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신부」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 출처 : 활짝 웃는 독서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