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섶섬이 보이는 방_이중섭의 방에 와서 / 나희덕

moon향 2014. 9. 19. 10:33

 

  

         섶섬이 보이는 방_이중섭의 방에 와서

          - 나희덕(제 22회 소월시 문학상 대상 수상작, 2008)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 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질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질을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 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질에 세 든 소라게처럼

 

 

*섶섬 : 제주 서귀포시에 딸린 작은 섬

       *아고리와 발가락군 : 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아고(일본어 '턱')+리(이중섭의 이),            

 아내 마사코(한국이름 이남덕)의 발가락 상처를 치료하다가 예쁘다고 이중섭이 아내에게 붙인 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