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날개'는 알라딘 사이트에서 책을 고르다 만난 중고서점이다. 온라인 중고서점을 보면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은하수'나 '인동초'나 '구름빵'처럼 간단하게 쓰기도 하고, '달빛에 홀린 두더지'나 '유의사항확인요망' 같은 특이한 이름을 쓰기도 하고, 본인 이름을 내걸기도 하고, 영어와 숫자를 섞어서 쓰기도 하는데, 헌책을 팔면서 '새책전문점'이라 하는 곳도 있어서 책방 이름들만 봐도 재밌다.
은빛날개와 첫 거래는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찾던 중고도서가 있어서 몇 권 주문했는데, 두 권은 재고 확인이 안된다는 연락이 왔다. 부분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차액을 돌려받지 않고, 다른 책으로 교환하겠다고 했다. 전화기에서 들리는 말투가 남달랐다. 소통이 시원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끝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례지만 혹시 한국사람 맞아요?"
"에에... 한쿡사라민데 좀 그러쵸... 미아납니다!"
"앗! 제가 미안합니다. 발음이 독특해서 여쭤 본 거예요"
"사람드리 그럭케 그럭케 마랄 때 이써요..."
남의 아픈 곳을 쑤신 사람이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만 늦는 게 아니라 발음도 살짝 깨진 화자였다. 이런 분께는 말 속도를 차분하게 맞춰야 한다. 주문 도서 중에서 같은 책을 한 권 더 구할 수 있는지 물어 보니 다행히 재고가 있다고 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추가 주문한 책값은 따로 송금하겠다고 했다. 그쪽에서는 한 권밖에 안되니 그냥 주겠다는 것이다.
좋은 제안은 비누방울처럼 톡 터져버릴 때가 있다.
두어 시간 후에 문자가 왔다. 전산 상으로는 재고가 있었는데, 찾아보니까 없다면서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난 괜찮다는 답장을 보냈다. 원하는 중고도서를 서비스로 한 권 보낼 테니 제목을 말하라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는 답장을 한 번 더 보냈다. 며칠 후 택배가 도착했다. 문자로는 완벽했지만, 전화로는 답답했던 사람이 궁금해졌다.
두어 달이 지났다. 장바구니 목록을 보니 은빛날개에 재주문 할 정도였다. 알라딘에서 중고도서 판매성사 수수료는 10%다. 가령 5만원 정도 도서를 팔면 알라딘에서 5천원을 가져가고, 배송료는 따로 결정된다. 책방은 책정 가격에서 80프로 이상 얻는 셈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방 연락처가 있으니, 알라딘을 통하지 않고 바로 거래하면 책방으로 이득이 가지 않을까 싶었다. 은빛날개에 문의했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다. 천천히 말하는 내 이야기를 못 알아들은 건 아니었다. 그가 사장이 아닌 직원이라 결정권이 없었을 뿐.
온라인으로 은빛날개 책방에 새 주문을 넣고, 며칠 후 책을 받았다. 그런데 책 한 권의 책등이 찢어져 있었다. 책꽂이에 책을 꽂으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책등인데! 규정대로 하자면, 알라딘 사이트 '판매자에게 문의' 코너에 글을 남겨야 한다. 주문도서 정보가 달라서 교환을 원하는 경우다. 최상을 주문했는데, 다른 것을 받았기에......
문자 소통이 나을 것 같았다. 상황을 설명하니, 그쪽에서 미안하다며 전화가 왔다. 최근에 책방을 옮기면서 손상된 것 같다고 더듬더듬 설명했다. 판매자 실수로 잘못 배송된 책을 반품하고 새로 받으려면, 배송료를 그쪽에서 물어야 한다. 4~5천원짜리 책 한 권도 교환하려면, 왕복 배송료를 지불해야 한다. 책을 안 파느니보다 못한 일이 생기게 된다. 은빛날개에 손해를 끼치게 하고 싶진 않았다.
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책을 또 주문하기로 했다, 당장 필요한 책은 아니라도 언젠가 읽어야 할 책을! 새로 주문한 책을 보낼 때 그쪽에서 '파손된 책과 똑같지만, 상태가 나은 책'을 끼워서 보내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반품 절차를 생략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똑같은 책을 두 권 갖게 되니 내게도 이득이다. 그도 배송료를 덜 쓰게 되었으므로 좋아하는 눈치였다. 알라딘에서 물의를 빚는 상황을 막기도 했으니. (개인 책방 평가! 그런 것도 있지 않겠나?)
세 번째로 책이 도착했다. 상자에 붙은 셀로판 테이프를 조심조심 뜯고는 문제의 책부터 살펴보았다.
안 좋은 일은 두 번 반복되기도 한다!ㅠㅠ
겉표지는 멀쩡했다. 이번엔 속표지가 말썽이었다. 책 내부를 잘 살피지 않고 보냈나 보다. 속지가 조금 뜯어져 있고 얼룩도 묻어있다. 실망감이 차올랐지만, 도리가 없다. 절판도서를 구입할 때, 최상품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상'이나 '최상'을 주문해도 '중'이 올 때가 있다. 오래된 책은 기준이 모호하니......
그냥 넘겨야 하나 싶다가, 현재 상황을 문자로 보냈다. 바로 전화가 왔다. 잘못 살펴서 너무 죄송하다고, 하지만 해당 도서 재고는 더 이상 없는데 어떡하냐고 더듬더듬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앞으로는 꼼꼼한 일처리 부탁해요!"라며 통화를 맺었다. 은빛날개와 또 거래하려면 장바구니에 책이 쌓여야 한다. 다음에는 그 직원이 실수 안 하길 빈다! 그가 노련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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