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은 청정 지역
압도적인 재난 앞에서도
학생들은
미친 듯이 웃고, 떠든다.
백석의 시를 읽고
바흐의 칸타타를 듣고
걸그룹의 〈흔들려〉를 듣는다.
종북, 친일, 극우, 핵무기, 관피아
아무리 세상의 언어가 험악해도
고등학교 교실은
청정 지역
비무장 지대
즐거웠던 기억이나 좋았던 감정을 많이 나눠야겠다.
해학의 언어를 많이 사용해야겠다.
칭찬을 더 많이 해야겠다.
어른들보다 더 명랑하고 활기찬 사람으로 자라서
더 멋지고 위대한 나라의 목자가 될 수 있도록!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하더라도
환란의 비바람 모질게 불어도
더 밝은 표정으로 학생들을 대해야겠다.
꿈틀, 꿈을 담는 틀
저는
‘듣보잡대’ 출신의 전자업계 CEO가 될게요.
고졸 생선장수가 되겠습니다.
서울대 나온 농부가 되고 싶어요.
우주 청소부가 될래요.
술 잘 먹고, 야생 버섯을 잘 채취하는 자연인으로 살게요.
목욕탕 주인이 되겠습니다.
숲을 가꾸는 꾀꼬리 정원사가 되겠습니다.
곤충을 좋아하는 가로등이 될래요.
꿈틀거리며 살겠습니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을 배우면서
학생들이 발표한 내용이다.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밥이나 빌어먹고 살겠어요?”
벽화를 그리자
- 미술 수업
교실 벽에 너를 붙여라.
사물함에 선생님을 붙여라.
칠판에 친구를 붙여라.
무슨 내용이든 좋다.
쪽지, 사망 신고서, 편지, 반성문, 사진, 격문……
만화를 그려도 좋고
시를 써도 좋다.
인생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삶이 깜깜한 벽이라고 느껴질 때
오늘의 도배 수업을 떠올리면 좋겠다.
벽과 친해지거라.
세상은 벽이다.
‘최우수 엄마 표창장’을 만드는 녀석도 있다.
‘담임 독촉장’을 만드는 녀석도 있다.
먼 미래에게 ‘유언장’을 쓰는 녀석도 있다.
벽에 여래(如來)를 그려 넣는 녀석이 있다.
- 장인수 시집『교실-소리 질러』(2015)에서
1968년 충북 진천 출생. 2003년《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유리창』,『온순한 뿔』.
현재 중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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