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동 시 ♬ 좋 아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 곽해룡 동시집에서 추천 동시

moon향 2015. 5. 21. 16:06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

 

 

 

                                           - 곽해룡 / 문학동네(2015)

 

 

 

 

 

두어 달 전

주먹만이나 한 감자 한 알

책상 서랍에 넣어 둔 것이 언뜻 생각나

 

지가 어쩌고 있나 보려고 열어 봤더니 글쎄,

잔뜩 성이 난 주먹 하나가 나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바짝 치켜들고 있다

 

 

 

 

붕어빵 먹는 고양이

 

 

고양이가 붕어빵을 먹는다

와작와작 씹어 먹지 않고

쪼끄만 혀로 살살 핥아 먹는다

 

가시에 찔릴까 봐 조심하나 보다

 

고양이가 앞발로 붕어빵을 툭툭 친다

붕어빵이 터져 팥고물이 새 나온다

고양이는 붕어빵을 버리고

붕어빵 치던 발을 바르르 털어 댄다

 

썩은 생선인 줄 아나 보다

 

 

 

 

낙타

 

 

낙타는 사람을 등에 업고 다니지만 제 자식은 한 번도 업어 주지 않았다.

 

 

 

 

달팽이

 

 

달팽이는 자기 몸 하나 달랑 들어가는 집을 등에 지고 다닌다. 집을 내려 땅을 차지하는 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소라 껍질은

 

 

소라 껍질은

집이 아니라 옷이다

걷지 못하는

아랫도리를 감싸 주는 옷이다

 

소라는 죽어서

옷 한 벌 남긴다

 

스스로 옷을 짓지 못하는

소라게를 위해

천년을 입어도 안 떨어지는

옷 한 벌

 

 

 

 

민들레 꽃씨

 

 

민들레 꽃씨

후우 불지 마세요

 

엄마가

마지막 젖을 물리고 있으니

 

민들레 꽃씨

후우 불지 마세요

 

동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민들레 꽃씨

후우 불지 마세요

 

제각각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으니

 

 

 

참외

 

 

참외 꼭지는 쓰다

 

쓰디쓴 꼭지를 빨면서

참외는 제 몸을

 

단물로 가득 채웠다

 

 

 

 

방학 숙제

 

 

죽음을 앞둔 부자가

평생 모은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기부했다고 합니다

 

개학이 다가오자

하느님께 낼

밀린 방학 숙제를

한꺼번에 했나 봅니다

 

 

 

곽해룡의 동시에선 젖 냄새가 난다. 흔히 말하는 유아적 태도나 유치함의 은유로서가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층위에서 그렇다. 그의 동시에선 꽃씨 달린 민들레는 엄마가 아이에게 마지막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으로, 무른 홍시는 잘 여문 씨들에게 온 힘을 다해 젖을 짜 먹이고 있는 모습으로 성화(聖化)된다. 시인의 웅숭깊은 모성적 상상력은 자연과 사람, 우주를 포용하며 한 덩어리로 호흡한다. 또한 그 세계에 자리한 진한 곰국 같은 득의의 웃음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서로 어깨 겯고 이 험난한 세상을 견디게 하는 힘을 선사한다.”  - 유강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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