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2014 천강문학상 시부문 수상작과 심사평

moon향 2014. 9. 4. 21:10

 

 

6천강문학상 시부문 수상작 모음 

 

대상

 

꽃피는 칼

칼자루도 없이

칼은 새파랗다

봉안鳳眼이 조각되어 있는 칼날, 칼이 하는 일은 바람을 베는 일이지만

자투리 필요한 한 뭉치 바람이 스스로 와서 베일 때가 많다.

이 칼은 광석이 아니다. 양쪽 날을 가지고 있는 검의 끝은 여전히 벼려

지는 중이어서 휘어져 있다. 누가 산속에 칼을 꽃아 두고 갔나. 새파랗게

녹슬면서 가끔 꽃도 피우는 그 칼을 누군들 쉽게 뽑겠는가.

칼 한 자루를 오래 감상했다

향기가 일획으로 지나간다.

정점으로 향한 떨림의 순간, 바람은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고 칼은 별자리

방향을 따라 빛이 바뀐다.

칼은 스스로 시들어 칼집 속으로 웅크리고 들어간다.

칼 가는 사람도 없이 파랗게 날을 세우고 휘두르는 힘이 다 빠지면 절옆

으로 휘어진다. 한 데 엉키는 칼끝을 조심해야하며 봄이면 멀리 동쪽에서

찾아오는 꽃이 있어 서리와 동풍을 빼내야 한다.

일합一合의 불꽃도 없이

꽃피운 칼

갈라지는 칼끝에서 꽃잎 떨어진다.

 

스프링 벅

노트를 펼치자 칼라하리 사막이 보인다

스프링 벅의 발굽으로 내 노트엔 많은 것이 지나갔다

계절을 삭제해버리자 물이 지나간 흔적이 보인다

불길을 따라가면 강이 나온다고 적혀있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 노는

아슬아슬한 스프링 벅은 위험하다

펼쳤다 접히는 갈피마다 스프링이 튕겨 오른다

스프링을 달고 있는 뿔들

어떤 형태로 묘사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다 달을 놓친 날

무릎들로만 걸어가는 가족을 본다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말을 하고

말없는 무릎들이 낡은 버스를 타고 질주의 좌석에 앉아있다

이럴 때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엎질러진 기억을 줄줄이 엮어 끌고 오는

구름의 뒤통수를 아버지라 불러보려다

앞만 보고 달리는 스프링 벅을 생각한다

바위산을 오르내리며 푸른 풀밭을 찾아 떠돌다

스프링 노트를 찢다보면

뿔만 남아 있는 산양들이 된다

골목을 오르내리며 푸른 풀밭을 찾아 떠도는

산양들이 지나간 곳마다 스프링 노트가 찢어졌다

구름의 귓속말에도 현혹 된 적 있다고 적혀있다

피가 지구를 한 바퀴쯤 돌아서 오는 걸 알 수 없다

그때 후드득 노트가 찢어졌고

산양들이 바위산으로 올라가고

집집마다 석양이 켜진다.

회오리 분청사기

회오리 하나가 분청 화병에 들어오래 머물고 있다.

몇 백 년 동안 한 쪽으로 감긴

회오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감겨진 바람은 반대 방향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안다 해도 깨어져 버리면 그만이다.

회전도 늙으면 그 색깔부터 바래져가고

뭉쳐진 바람이 가두고 있는 공명은 뚜껑이 없다.

공기를 묶으려면 주의가 필요하다.

뭉쳐진 바람을 왜 장식으로 올려놓았는지

손을 넣었다 빼면 엄청난 회오리풍 손금이 묻어나올 것 같다.

일직선으로 달리는 폭풍우는 없다.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후

틈이 없는 회전으로 여전히 돌고 있는 바람

그 바람 다 굳어지면 파편으로 빛날 것

날아가는 실밥이 순식간에 회오리를 깨트린 적이 있다.

분청 화병의 주둥이 안쪽에 들어 있던 것은

더도 덜도 아닌 탁음의 전부였다고 여겼던 때가 있다.

파도의 포말이 만든 고등은 분청사기 색깔이다.

회오리 돌기가 있는 사기에는 내장이 들어있듯

하나의 몸으로 오래 살고 있는 화병

분명 아슬아슬한 내장이 들어있을 것이고

한쪽으로 감겨 풀지 못하는 것들은

비장함과 돌아눕지 못 한 그늘이 함께 감겨있다.

가만히 귀를 대보면

묶인 바람소리 들린다.

모든 바람 소리는 파손의 전조(前兆).

 

최정아 (본명 최정순)

- 1953년생(호적나이 1950년생) 경기도 수원 출생 장안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수료 2009년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당선 시집바람은 색깔을 운반한다

 

우수상

 

버드나무 활극

버드나무 그림자에 불을 붙인다. 불을 씹어 화병(火病)을 태운다. 마음의 경계가 무너진 수면. 찌불은 물의 흐름을 끊어 놓고 어둠은 고여 잠잠하다. 여명 속으로 가라앉는 급류. 능청능청 물밑으로 그늘을 밀어 넣는다. 허공의 발목에 안개의 푸른 띠를 채우고 무대 위를 껑충 뛰어오른다. 주린 목구멍을 열고 있다. 목구멍 속으로 쭈르르 미끄러지는 구렁이. 빛기둥을 틀어쥐고 있다.

달빛은 물속에 고름을 짜내고 밤새 귀가 아프다. 완성을 목표로 쏟아지는 빛. 찌불을 밝혀 물결무늬 속 문장을 읽는다. 물의 행간체가 덜컹거린다. 녹색 구렁이의 혀가 잘리고 빛기둥 아래 소금쟁이들이 수면의 뇌관을 당긴다. 달빛에 쏘인 버드나무 가지들이 경악한다. 흔들리고 있다. 고목은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웅크린 벼랑 아래로 실버들이 유탄처럼 생각을 늘어트리고 있다.

밤새 털 달린 짐승들이 내려왔다가 잠시 나를 견디고 갔다. 마음의 여울을 흔들 때마다 고독은 유쾌하다. 산중협곡 뭇별들은 또렷하고 털 달린 짐승들은 착하다. 물속 고름집이 터지고

찌 불 하나가 뭉클, 솟아오르고 있다.

 

버드나무 수목장

조카가 키우던 노란 잉꼬가 죽었다.

죽은 잉꼬를 버드나무 물가로 데려갔다.

슬픈 무덤이 만들어지고

아이의 눈물 속으로 새떼들이 날아왔다.

애기똥풀을 꺾어 무덤 위에 꽂아주자

버드나무들이 긴 조문행렬로 출렁였다.

먼 산 타종이 울려오고

잉잉대는 새들의 찬송.

물결무늬 경전을 읽는 햇빛 아래

물 한 컵과 좁쌀을 뿌려주었다.

실버들 아래 모인 새들에게도 젯밥을 나눠주는 아이.

능청능청 휘어지는 그늘이

슬픈 동화의 한 때를 견디고 있었다.

나비가 잠시 문상을 오고

아이의 눈물 자국 위로 긴 무지개가 흔들렸다.

버드나무 아래 오롯한 조막손,

아직 경계 없는 손금을 펼치며

내 눈물도 몇 방울 훔쳐보았으리.

죽은 새를 슬퍼하지 마라

버드나무 건너편 장다리 꽃밭을 바라보지 못하는 아이.

항아리 빛 저린 슬픔을 배우기 전

세상은 빛나고

봄은 너의 무지개란다.

 

묵밥

, 눈물이 돌아 나오는

메밀꽃 지던 언덕에서 소녀는 딸아이를 닮았고

메밀꽃 향기가 훅 마음을 쓸어내렸다.

뒤꼍 큰 마당에 간장이 익고

간장 빛 그늘로 저녁이 오고 있었다.

소녀는 맑고 향기롭고 파란 햇빛이 되었다.

묵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놓고 소녀를 한참 바라보는 동안

메밀꽃은 뚝뚝 지고 있었다. 강둑으로 노을이 쏟아졌다.

노을 곁을 걷는데 두고 온 묵밥이 목에 걸렸다.

메밀꽃 향기가 자욱이 강변에 깔렸다.

아이의 작은 보조개 안에 강물이 고였다.

베갯닢 아래에 벼랑이 생기고 무수한 별들이 지나갔다.

평상에 나와 앉아 먼 딸아이에게 전화하였으나 낯설었다.

어린 딸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메밀꽃 향기를 견디고 있는 저녁.

 

김대성

- 1962년 충남 대전에서 21녀 중 장남으로 출생 출생만 대전이고 1살부터 서울 생활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 아이아이씨 인증원 근무 중

 

 

우수상

 

녹이 슬었다

십정동 골목 옛집 철제대문 앞에 걸터앉아 어제를 기다리다가 구멍 뚫린 녹의 냄새를 맡다가 감꽃이 똑 떨어지는 골목에 쇠망치처럼 앉아 있다가 희미한 시간에 대해 물어보다가 압정 같은 대답에 온몸을 찔리며 빨간 노을을 따라 가다가

철판 같은 당신의 이름에 녹이 슬었다 녹은 습기 쪽으로 치우쳐 하지 않은 말을 피워내고 있었다 녹을 감추기 위해 파란 페인트를 두껍게 칠해 놓았다 기억은 우툴두툴 보기 흉했다 어딘가 존재하지만 부를 수 없었다 꽃은 잠깐 왔다 갔지만 녹은 한 번 와서는 혼자 가지 못했다 내 손에는 녹을 닦아줄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녹은 차가운 쇠에 입혀진 무늬 당신 속의 녹은 아마도 내 입김이 다녀간 시간이다

누군가를 다시 부르는 일은 녹슨 대문을 밀어 보는 일 저 안의 풍경이 삐그덕 소리를 냈다 닿는 것마다 녹물이 들어 지워지지 않았고 피 같은 비린 냄새를 풍겼다 녹은 소리도 없이 조용히 왔다 종아리가 가려워 벅벅 긁었다 뻘건 녹 가루가 땅에 떨어졌다 온 몸에 녹이 슬었다

 

오이지

소금을 계속 풀었고 우리는 어제를 가라앉게 하는 농도에서 멈추었네

지난 사랑은 소금물 위로 자꾸 고개를 내미네

우리가 믿는 것은 언제나 퇴색되어진다는 것

싱거울 때는 오이지를 숟가락으로 떠먹었네

잠겨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절여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저 이따금 오이지를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되네

오이지는 느리게 가고

오이지는 거짓말이고

오이지는 마흔 여섯이고

오이지를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커다란 돌덩어리에 눌려 사라진 푸른 오이 향을 떠올리는 건

오이의 감정일 뿐인가

우리의 믿음은 오이지를 다 먹을 때까지 내내 큼큼한 냄새를 풍기며

골마지가 끼어가는 거

오이가 오이지가 되는 사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항아리 뚜껑을 닫고 기다리는 것

저기와 여기 사이

있다와 없다 사이

어느 간절함이 머물다간 사이

얼굴은 찌그러지고 색은 퇴색되고 소금기가 온 몸을 장악할 때까지

우리도 적당히 잊혀지면 되네

오이지를 떠먹으며 우리는 그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네

 

목련이 페이지를 열었다

오후 3시의 목련 잎 사이로 20년 전 아침이 끼어든다 수돗가 세수하는 등 뒤에서 나를 깨우던 툭 하는 소리 담장 밖에서 보이던 하얀 얼굴 다시 3시와 4시 사이에서 쓸쓸함이 어떻게 오는지 알게 되었다는 어제의 그녀 목소리가 끼어들고 그녀의 살결이 만져졌다 어떨 때 페이지에서 강물이 흐르고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나와 어리둥절했다 어둔 골목길을 휘청거리던 발걸음이 걷고 있었고 뒤죽박죽의 시간들이 끝없는 페이지를 만들고 있었다 첫 페이지가 어디인지 펼치지 못한다 한 봉우리의 꽃잎이 326페이지이다가 573페이지가 나오기도 한다 까치가 부리로 페이지를 넘기고 늦은 바람이 넘기고 목요일 오후 5시가 페이지를 넘겼다 넘겨도 끝 페이지를 찾지 못했다 한밤중이 깨어나 페이지 사이를 서성이며 울고 있었다 뒤적뒤적 한 밤이 다 가고 있었다 꽃피는 저 속에 반짝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오후 3시와 4시 사이에 한 생이 왔다 갔다

 

정진혁

- 공주사범대학국어교육과 졸 2008내일을 여는 작가등단 2009년 구상문학상 신인상 수상 2010년 시집 간잽이출간 201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혜

 

 

6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 소통이 되는 신선한 시를 바라며

 

6회를 헤아리는 천강문학상은 국내외의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가 응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등단 여부에 관계없이 기성문인에게까지도 응모의 기회가 주어지는 상이며 멀리 외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 가운데서도 수상자가 나올 만큼 범위가 넓습니다. 또한 대단히 공정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심사는 상의 위상을 한층 드높이고 있어 역량 있는 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바이기에 심사에 임하는 마음도 그만큼 긴장되었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겨진 작품은 347분 총 2,538편이었습니다. 작품 모두는 작자의 기량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고 보아졌습니다.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작품들의 산문화였습니다. 이것이 요즈음 우리 문단의 일반적인 경향인 듯도 합니다. 시에는 산문시라는 갈래가 있습니다만 산문시가 산문과 구별되는 것은 그만큼 응축된 시정신과 간곡한 전언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는 미흡한 산만성이 엿보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모든 작품들에 유사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성명과 기타 신분을 모르는 상황에서 작품을 심사하는데 주제나 소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작품들 나름의 특성을 찾기가 어려웠으며 동일 작자의 작품이라 하여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천강의 충절과 의로운 정신이 반영되고 내포된 작품들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문학상의 특별한 성격을 헤아릴 때 그분의 삶과 행적에 대한 관심과 기림은 우선되는 내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심사에 임할 때 심사위원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기준 삼았습니다.

 

첫째, 소통성 유무였습니다.

시가 가지는 필연적인 모호성과 난해성 이외의 이해불능, 불통의 시여서는 독자가 수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를 쓴다는 의의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둘째, 앞서도 지적한바 얼마나 개성적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각자의 얼굴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듯이 시도 작자에 따르는 각각의 자기 얼굴과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참신성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로 쓰는 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시를 썼겠습니까. 그러나 시가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늘 새로웠기 때문입니다. 창작의 기본이 새로움인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넷째, 응모한 여러 편의 작품들이 균등한 수준을 이루고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작가의 기량을 가늠할 수 있게끔 여러 편의 작품들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살폈습니다.

 

다섯째,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보았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나 뜨거운 감정이라 할지라도 시로 형상화되지 않으면 그것들은 생경한 시의 자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시로 형상화 되어 감동을 이끌어낼 때 비로소 그 작품을 우리는라고 부르게 됩니다. 특별히 천강문학상의 취지와 정신을 생각할 때 감동적인 내용이 형식과 잘 조화를 이루었나를 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대략 이런 기준을 염두에 두고 본심에 임하였습니다. 여러 번의 숙독과 심의를 거쳐 최정아씨 (<꽃피는 칼> )를 대상 수상자로, 김대성씨 (<버드나무 활극> )와 정진혁씨(<녹이 슬었다> )를 우수상 수상자로 뽑았습니다. 최정아 씨의 작품들은 여러 편의 작품들이 고른 수준이었으며 <꽃 피는 칼>에서 보여주는 비약적인 은유와 상상력, 식물이미지와 광물이미지의 결속 등을 높이 살만 합니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항용 꽃이 중심이 되는 것이지만 잎이 주인이 되는 변용의 묘, 충돌하면서 합일하는 비유의 심안은 만만찮은 기량을 드러낸다고 보았습니다. 굽힘 없는 생명의지, 그리고 생명의 순환 과정을 그린 사색의 깊이도 간과할 수 없는 점이었습니다. 김대성 씨의 작품 <버드나무 활극>은 감각적인 묘사가 수용자의 시각과 청각과 촉각 등을 모두 동원하게 합니다. 무생물들이 생명을 얻고 힘차게 움직이는 역동성은 제목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한 편의 활극입니다. <버드나무 수목장>이나 <묵밥>은 죽음과 이별이 제재이지만 슬픔을 극복하는 의지가 긍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슬픔의 승화가 주는 정화의 세계가 독자를 이끕니다. 그러나 좀 더 정연한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점과 더불어 감동의 깊이가 의도만큼 이루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진혁 씨의 <녹이 슬었다> <오이지> <목련이 페이지를 열었다>들에서 읽게 되는 목숨의 유한성은 운명이라는 말을 일깨웁니다. 그중에도 <오이지>의 선명한 비유는 공감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시가 마땅히 지녀야 할 긴장감이 부족한 것은 이 글의 지나친 산문성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하면서도 주제를 흩트리지 않고 끝까지 이끌어 간 저력에 주목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김인숙씨의 <자주달개비의 문>과 김인후씨의 <윤도> 등이 논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더욱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입상하신 여러분께 축하를 드리며 문운이 더욱 빛나기를 빕니다. (심사위원 문인수 허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