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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 갈산 치낙

moon향 2014. 10. 19. 21:06

푸른 하늘

 

           - 갈산 치낙 지음,  moon향 읽음

 

 

  중고서점 알라딘 문고 소설코너에서 <푸른 하늘>이라는 책 제목이 눈에 띄어서 집어들었다. 정가 12,000원 짜리 책을 4,900원에 구입했다. 저자 갈산 치낙(Galsan Tschinag)’은 몽골 투바족 유목민이다. 1962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동독으로 유학을 떠난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후에 독일어로 소설을 쓰고 있다. 몽골의 울란바토르 대학에서 독문학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나 정치적 이유로 학교를 떠났다. 2011년이 이 책의 초판인 걸 보니 이 작가가 우리나라에 소개 된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몽골 현대 문학을 이 책을 통해 접하게 되는 셈이다.

 

  푸른 하늘은 독일어로 Der Blaume Himmel(데어 블라우메 힘멜)이다. 저자는 그에게 늘 따뜻한 태양 같았던 할머니와의 추억을 그리며 이 소설을 썼다. ‘주르크바라는 소년의 악몽으로 시작한다. 나쁜 꿈을 꾸게 되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허공에 대고 말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라고 했다. 좋은 꿈을 꾸었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무한테도 꿈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며 혼자만 간직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소년의 어린 눈으로 할머니와 부모의 삶을 관찰한다. 유르테(몽골에선 게르라고 불리우는 이동식 집)에서 자라난 한 소년이 그의 유년기를 잃어가는 과정을 풍부한 감성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소수민족인 투바족이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을 고발한다.

 

  1960년 몽고 지역의 유목민들은 소련의 계획경제로 인하여 그들의 삶의 방식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들의 고유한 문화는 새로운 체제와 문명의 이기로 파괴되었고, 그들만의 언어마저 사멸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주르크바의 할머니는 지혜롭고 따뜻하다. 소년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할머니의 명언을 세 가지 적어본다.

 

① "네가 세상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우리 자신도 주변이 동물들과 가까운 친척 같은 존재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항상 옆에 있는 사람들과 왜 같이 못 살겠느냐? 우리는 나무의 새싹이고 어머니의 자식들이다.”

② “비단은 그 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아주 값진 것이지. 하지만 좋은 행주가 필요하다고 해서 누가 비단으로 행주를 만들겠느냐?”

③ “어미도 없는 새끼 양이 늠름한 숫양이 되고, 힘없는 한 여자가 유르테를 가득 채울 만큼 아이를 낳는 어머니가 된단다.

     그보다 더 훌륭한 일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남기신 말은 자신의 옷은 모두 태워버리라는 것과 함께 가족들을 위해 복을 빈 것이었다. 투바족들은 이별을 소금 속으로 간다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 시절에 소금은 정말 귀한 것이었으며, 소금을 구하려면 낙타를 타고 가야하고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그래서 소금 속에 파묻혔을지도 모를 할머니.

 

  새해가 되어 새달이 시작되었는데 사람들은 하얀 호랑이가 소리 없이 조용조용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날씨는 여전히 추웠고 하염없는 눈만 내렸다. 혈액성 이질이 돌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폭설과 폭풍으로 주트(악천후, 가축들의 극심한 곤궁기)가 닥쳤다. 건초가 부족했기에 산과 초원은 흰색으로 덮여 길들은 온 사방이 막혀 있어 어린 양들은 풀도 뜯을 수가 없다. 달군 돌멩이로는 손과 얼굴을 따뜻하게 하기엔 어림도 없고, 손끝이며 손등이며 코와 뺨과 턱까지 시리고 아플 때, 가축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죽고 추워서 죽고. 소년도 매일 아침마다 죽은 가축들의 가죽을 벗겨야 했다. 어머니는 신에게 당신은 왜 이리 가혹하시냐고 외친다.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일을 계속하던 아버지는 사냥을 위해 독을 산다. 소금 같은 하얀 가루를 사람들은 늑대가루라고 부른다. 사용금지가 되어 있었던. 제조업자는 신제품의 위험요소는 말하지 않고 장점만 늘어놓은 설명서로 슬픈 유목민족을 유혹하여 호황을 누렸다.

 

  늑대와 여우를 잡기 위한 독을 넣은 소시지 조각을 아르지랑이 먹고 쓰러졌다. 소년은 외친다. “, 푸른 하늘이여! 제 말을 들어주세요. 당신의 아들 주르크바가 기도합니다. 당신의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시면 충실한 종으로 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종이 되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아들 하나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저의 개 아르지랑을 살려주세요. 제가 당신의 아들로 계속 남아 있게 해주세요.” 아르지랑은 돌처럼 무거웠다. 소년은 속았다고 느꼈다. 도와줄 생각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하늘에 의지했던 것을 후회했다.

 

  소년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든다. “아버지가 그 빌어먹을 독으로 내 아르지랑을 죽인 거야. 그래놓고 이제 도울 수가 없다고요!” 아버지는 서글프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이놈아! 이 끔찍한 독은 한번 위로 들어가면 모두 끝장이야. 하느님도 어쩔 수 없단다.”

 

  할머니의 죽음과 소년을 분신처럼 따라더니던 개 아르지랑의 죽음은 전통문화의 단절과 유목민 생활의 파괴를 상징한다. 이 소설  초반부의 악몽이 암시한 것처럼 해피 엔딩이 아니다. 불의에 항거할 능력이 없는 소년은 반항심으로 울부짖으며 나뒹굴었다. 그게 끝이다.

 

  1996, 갈산 치낙은 투바족의 전통을 살리고자 필생의 꿈을 이룬다. 그는 몽골북부로 강제 이주되었던 투바 유목민을 이끌고 63일 동안 2천 킬로미터를 이동하여 원래의 고향인 알타이 산맥으로 돌아왔다. 칭기즈칸 이후 가장 거대했던 이동의 행렬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을 다시 보듯, 세상을 놀라게 했고, 고향을 잃고 억압 받았던 몽골 유목민들에겐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다.

 

  그가 몽골어도 투바어도 아닌 독일어로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륵이 <압록강은 흐른다><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를 독일어로 썼던 것처럼 그에게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구 문명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고발하면서 문화적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에 유목민의 투명한 시각을 드러내는 줄도 모른다. 거꾸로 이젠 우리 현대인들이 디지털 유목민’으로 바뀐 시대에 말이다 정착과 유목이라는 두 가지푸른 하늘아래 따스하게 어우러지길 소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