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수용소: 내 이름은 르네 타르디. 슈탈라크ⅡB수용소의 포로였다
평범한 프랑스 청년 전차병의 가장 비참했던 청춘
젊은 인생이 도약을 멈췄고, 미래의 계획은 무너졌으며,
몇 년간 수감생활로 허비된 삶, 외로움, 육체적 고통, 가혹 행위에 치욕까지……
포로들은 이 모든 것을 수용소에서 겪어야 했다.
조국은 그분들을 존경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조국은 그분들을 존경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내 이름은 르네 타르디. 프랑스 시골 마을의 평범한 소년이던 나는 1935년, 19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한다.
1차 대전에 참전한 아버지처럼 전쟁에 뛰어들었던 나는 1940년, 24살의 나이로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슈탈라크 수용소에서의 하루하루는 비참한 기분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배고팠고, 배고팠으며…
배고픈 날들의 연속이었다. 세계 각국의 포로들이 그곳에 모였고,
많은 이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기도 했다.
그리고 연합군의 승리가 가까워지던 1945년 1월 29일. 나는 4년 8개월, 1680일 만에 수용소를 떠났다.
영광스럽지 못한 영웅의 이름 ‘포로’
1940년 6월, 프랑스는 독일의 침공으로 약 한 달 만에 파리까지 함락되었다.
이후 몇 년간 나치 독일의 통치 아래 치욕스러운 시대를 맞았다.
국토의 반 이상이 점령당한 채 사실상 독일의 ‘속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독일의 감시하에 설립된 비시 프랑스와 결사 항전을 다짐한 자유 프랑스로 나뉜 채
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지나온 프랑스.
그 역사의 겹겹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포로수용소」는 전장 한가운데에서 악전고투했으나
끝내 사로잡히고 패배한 조국에서조차 잊히면서 가장 깊게 상처 입은 이들,
유럽 전역에 설치된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전쟁 포로들을 다룬
“내 이름은 르네 타르디(Moi René Tardi,)”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StalagⅡB”는 작가 타르디의 아버지가 실제 포로 생활을 했던 수용소의 이름이다.
2차 대전 종전을 목전에 둔 1945년까지의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
숨을 건 탈주 계획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독일인의 모욕도 견디며,
폭력과 전염병으로 죽어나간 각국 포로들을 보면서 감내한 5년여의 시간…….
끝내 수용소에서 맞이한 자유와 함께 돌아온 조국에 그들의 자리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어떤 영광도 남아있지 않았다.
생포되는 순간에도 혹독한 수용소에서도 우리는 끝까지 적과 맞섰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포획될 염려에 일부러 전차를 고장 냈고, 교량을 폭파했으나 독일군의 진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포로가 되었지만 모든 의지와 증오마저 결박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잃지 않고 사로잡히면서까지 적군에 항쟁할 수 있었다.
「포로수용소」의 값어치는 여기에 있다.
5년간의 포로 생활에 대한 다양하고 자세한 묘사를 통해
그 시대를 겪지 못한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주인공 르네 타르디는 폭약에 들어갈 암모니아를 추출하기 위해 퇴비 더미에서 말을 부려야했고,
군량을 비축하고자 진흙 밭에서 허우적거리며 감자를 주웠다.
전쟁의 광기로 미친 나치 독일에 어쩔 수 없이 협조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채찍질조차도 맨몸으로 견뎌냈다.
독일군의 회계 업무에 차출되어서도 문서를 위조하거나 허위 서류를 작성하는 태업은 계속됐다.
그러다 탈주를 계획하기도 한 것이다. 절망과 희망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하루하루였으나,
전쟁의 광기에 소모품으로 전락되고 마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각오로
나치 독일이 자행하는 모든 일을 방해했던 것이다.
르네 타르디를 비롯한 포로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저항은 그렇게 처절하도록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을 잇는 또 하나의 특별한 이야기
그렇게 험난한 시간을 지나오다 1945년 1월 29일,
수용소를 떠나라는 명령과 함께 갑작스런 자유를 맞은 르네 타르디.
지난 5년간의 절망적인 삶을, 굴욕과 수난을 또렷하게 기록한 그의 기억을 마침내 그의 아들이 만화로 되살렸다.
「포로수용소」는 적국 수용소에 감금된 5년여의 시간 동안에도 자존감을 잃지 않았던
프랑스의 2차 대전 참전 병사의 생을 그린 타르디의 최신작 중 첫 번째 시리즈이다.
『아델 블랑 섹의 놀라운 모험』(The Extraordinary Adventures of Adele Blanc-Sec)' 시리즈를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타르디는 전쟁의 참혹함을 그린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며
프랑스 ‘국민 작가’의 반열에 올랐으며 최근에는 프랑스 최고 영예 훈장인
레지옹도뇌르 수상을 거부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수상을 거부한 이유로 ‘사상의 자유, 창작의 자유를 치열하게 지키고자 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신념을 재차 강조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전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그 어떤 명예와 화려한 수식어보다도
타르디의 작가관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독특한 이력이 되었다.
1·2차 세계 대전에 각각 참전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타르디로서는
청춘을 바친 국가에 수많은 젊은이들을 무책임하게 소모시킨 ‘전쟁’으로 풀어 나갈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포로수용소」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각인되지 못했던 ‘포로’를 소재로
전쟁의 상흔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승리 뒤에 감춰진 비극, 영광만큼 지속된 상처
이렇듯 「포로수용소」는 무수하게 치러진 전쟁의 시작과 끝을 지켜보면서 죽어가고,
또 살아온 이들을 대변하는 전후 문학과 비슷한 특징을 지니면서도 시대에 등 떠밀리고 휩쓸려
패배감만 안은 채 돌아온 가련한 포로 한 사람의 일대기로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충실하고 정직한 기록, 아버지의 인생을 되짚어 역사와 인간을 연구한 타르디의 고민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으로 전쟁에 이겨서 얻는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하게 할 것이다.
죽을 고비를 숱하게 피하고, 갖은 모욕과 아픔을 견디며 겨우 해방된 ‘전쟁 포로’들은
오히려 승리한 나라에서 마음껏 기쁨을 누릴 수도, 패배한 나라에서 함께 슬퍼할 수도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최전선에서 가장 치열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전쟁의 반인륜적인 면모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전쟁 포로는 어떤 때에도 항상 인도적으로 대우받아야 하며 인간적 존엄성이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
- 전쟁 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3차 제네바 협약 조항 중에서-
- 전쟁 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3차 제네바 협약 조항 중에서-
1864년 처음 체결된 제네바 협약은 부상병, 포로, 민간인에 대한 보호를 위해
이후 몇 차례 개정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권리를 위한 범세계적인 약속이 제정된 이후로도
때와 장소만 바꾼 채 전쟁은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집은 흙더미에 뒤덮이고, 아이들의 놀이터에는 포탄이 떨어지며,
사로잡힌 인질의 모습은 TV로 방영될 것이다.
그렇게 전쟁을 직접 겪는 사람들도, 각종 매체를 통해 듣고 보는 모든 사람들도 상흔은 더욱 깊이 파일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들은 누구든 이 어리석은 역사의 책임과 위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포격과 폭음이 일상이 되고, 누구보다 평화를 절실히 바라며,
지난날의 비극에 인생을 지배당하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들을 잊어버릴 권리도 우리에겐 없다.
작가소개저자 : 타르디
1946년에 태어난 타르디(본명: Jacques Tardi)는 직업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유년의 대부분을 전후 독일에서 보냈다. 코르시카 출신이었던 할아버지가 겪은 1차 대전의 끔찍한 참상은 어린 타르디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으며 나중에 그의 작품 활동에 주요 테마로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리옹 미술대학과 파리 장식미술 학교를 나온 후 1969년 주간지 「필로트 Pilote」지를 통해 데뷔했다. 1972년 첫 장편 만화 「루에르그에 대한 소문 Rumeurs sur le Rouergue」 (시나리오는 크리스틴 Christin이 썼으며 1976년 퓌튀로폴리스 Futuropolis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을 발표했다. 같은 해인 1976년 카스테르만 출판사와 계약, 「아델 블랑-섹의 놀라운 모험 Aventures extraordinaires d’Adèle Blanc-Sec」 연작을 시작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1998년 11월 14일,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아델 블랑-섹 시리즈의 제 9편 「심연의 미스터리 Le mystère des profondeurs」을 발표했다. 이와 병행하여 네스토 버마 Nestor Burma의 모험을 그린 네오 말레 Lèo Malet의 「파리 Paris」를 각색 출판했고, 그 외에 「대넹크스의 최후의 전쟁 Le der des ders de Daeninckx」, 「보트렝 주민의 비명 Le cri du peuple de Vautrin」 등 여러 편의 각색 작품을 발표하여 많은 인기를 얻은 프랑스의 ‘국민 작가’이다. 2014년 1월에 열린 제42회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는 1차 세계 대전에 관한 그의 작품들이 메인 이벤트로 전시되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역자 : 박홍진
박홍진은 1995년 외국어대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 2001년 프랑스로 건너가 2003년부터 한국 만화를 프랑스 시장에서 출판했다. 현재는 통·번역사로 계속 활동하는 가운데 프랑스에서 한국 만화의 디지털 출판 시장 진출을 마련하고 있다. 주요 번역 작품으로는 「뚱뚱한 사랑」, 창해 ABC 북 「해」, 「뇌」, 「아니, 이게 나야?」, 「U-47」 등이 있으며 편역 작품으로 「이야기 샹송 깐초네 여행」, 「마법의 성에서 꺼내온 따끈따끈한 이야기」 등이 있다.
추천하는 말
이 작품은 뫼비우스, 엥키 빌랄과 어깨를 견주는 걸출한 작가 자크 타르디가 친부의 세계 2차 대전 포로수용소 당시 실제 경험담을 만화로 엮어낸 것이다.
자크 타르디는 환상적인 모험물 연작 '아델 블랑-섹'으로 알려져도 있지만 유독 내 눈길을 끈 것은 그간 국내의 만화연구서들을 통해 소개되어온 '그것은 참호전이었다'라는 그의 할아버지가 겪은 세계 1차대전에 관한 전쟁역사물이었는데, 이번 길찾기에서 나온 '포로수용소'는 그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가 겪은 또 하나의 커다란 전쟁을 다루고 있다는 것에 대해 참 기이한 운명이구나 싶었다.
책을 읽으며 이 이야기가 개인의 회고에 중심을 두면서도 그 주인공의 눈을 통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상황을 빈틈없이 그려내고 있어, 전쟁을 치르던 프랑스와 독일 그외의 세계가 당시 어떠했는지를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독자에게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는데에 놀라움을 느꼈다.
가족사이에 토막 토막 펼쳐지기 쉬운 무용담이나 우스개소리들이 정연한 역사현장에 독자를 몰입시키는 그림서사로 거듭난 것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고 책을 덮었을때는 아트 슈피겔만의 '쥐'에 버금가는 감동을 느끼며 눈시울을 닦아야 했다.
역사란 정통한 사학자와 학문 연구자에 의해서만 기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당신 그리고 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개인사가 모여서도 하나의 거대한 역사로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자크 타르디가 그토록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손꼽히는 그래픽노블의 대가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의 국내출간을 통해 이런 작품들이 한국만화계에도 진한 울림이 되어 작은 개인의 역사들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서사의 물결로 꾸준히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이주석, 『매거진 그래픽노블』편집장
'잠 깐 만.....♡ > 책 읽 는 시 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희경 금성녀』- 제14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0) | 2014.12.08 |
---|---|
『푸른 하늘』 - 갈산 치낙 (0) | 2014.10.19 |
다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 - 이안, Yes24자료 (0) | 2014.09.30 |
『미생(未生)』 - 윤태호 (0) | 2014.09.24 |
『사랑이에게 물어봐』- 티에리 르냉(어린이 성교육 시리즈) (0) | 2014.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