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건국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98년 『녹색평론』에 「성난 발자국」 외 2편의 시를 발표하고, 1999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우주적 비관주의자의 몽상」 외 4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목마른 우물의 날들』과 『치워라, 꽃!』이 있으며 동시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가 있다. 현재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 편집위원이다.
제1부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
오늘 이 밤엔, 어떤 동시를 읽을까 15
웃음팡을 터뜨려라, 팡팡! 19
시를 줍다 23
잣나무 씨, 안녕? 29
어떤 말들이 노래가 되나 33
가자, 브레멘으로! 38
귀향인의 노래 44
동시조의 세계 52
성적 금기에 도전하다 57
더 많은 틈이 필요해 64
도미노의 첫 팻말을 건드리다 69
똥개도 백 마리면 범을 잡는다 74
바보야, 문제는 속도야! 79
온몸으로 쓰는 동시 83
양파를 기다리며 89
동시성에서 비동시성으로 94
제2부 경계의 안과 밖
경계를 넘어 또 다른 시로 태어나는 103
존재의 형식을 탐구하다 116
달팽이를 그리는 방법 5+1-같은 소재, 다른 세계 125
조화로운 삶-서정홍·김용택·민경정의 경우 137
풍경과 서사-2000년 이후 발표된 농촌동시를 읽고 147
주목할 만한 시선-2012년 동시단의 흐름과 향후 전망 167
제3부 천착과 전망
『저녁별』의 창작방법 들여다보기-송찬호 동시집 『저녁별』 183
나는 연두, 아직 많은 게 남은 연두-박성우 청소년 시집 『난 빨강』 196
너른 품으로 안아주는 시-성명진 동시집 『축구부에 들고 싶다』 207
열등의식을 넘어 추문화의 길로-남호섭 동시집 『벌에 쏘였다』 217
시가 가는 길은 늘 새길-정유경 동시집 『까만 밤』 227
어이없는 놈의 세계-김개미 동시집 『어이없는 놈』 239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을 꿈꾸다-안도현 동시집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249
‘놀이’의 시가 주는 즐거움-최승호 동시집 『말놀이 동시집 1』 257
안 잊히는 동시집-『겨레아동문학선집』 9·10권 다시 읽기 265
제4부 동시집의 뒷자리
‘밥풀의 상상력’으로 그린 ‘숨은그림찾기’-김륭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277
기린 아저씨 오신다, 고깔모자 쓰고 목에 방울 달고-송찬호 동시집 『저녁별』 285
종심(從心)의 눈으로 바라본 시의 세계-강정규 동시집 『목욕탕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296
반성과 소망, 순정의 시-안진영 동시집 『맨날맨날 착하기는 힘들어』
나는 우리 동시의 가능성을 믿는다. 시, 또는 시인에 대한 믿음은 어느 시대에든 철회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 동시가 보여준 변화 발전 양상은 이런 신념을 더욱 든든히 다져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언제까지나, 시는 현재의 것이라기보다는 미래의 것이다. 현재는 찰나적 순간의 실현일 뿐이지만 미래는 언제나 다가오는, 다가오지 않은 것으로서 영원하다. 실현 되자마자 사라지는 현재가 아니라 결코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지향함으로써 시인은 언젠가 다가올 미래에도 여전히 미래로 읽히는 시를 쓸 수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언제까지나 오지 않는 미래를 호명하며 현재를 허기 속에 살아가는 시인의 운명에 경의를 보낸다.(8쪽)
말이 어떻게 놓이는가에 따라 시가 되고 안 되고가 판가름난다. 말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주체의 세계 인식이 달라지고, 이제까지 당연하게 맺어왔던 관계에 변화가 온다. 명명되지 않은 것은 인식되지 않은 것이며, 이미 인식된 것은 새로운 명명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이는 언어의 한계이자 가능성이며, 시의 한계이자 가능성이다. 새로운 인식은 새로운 언어를 낳는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인...나는 우리 동시의 가능성을 믿는다. 시, 또는 시인에 대한 믿음은 어느 시대에든 철회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 동시가 보여준 변화 발전 양상은 이런 신념을 더욱 든든히 다져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언제까지나, 시는 현재의 것이라기보다는 미래의 것이다. 현재는 찰나적 순간의 실현일 뿐이지만 미래는 언제나 다가오는, 다가오지 않은 것으로서 영원하다. 실현 되자마자 사라지는 현재가 아니라 결코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지향함으로써 시인은 언젠가 다가올 미래에도 여전히 미래로 읽히는 시를 쓸 수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언제까지나 오지 않는 미래를 호명하며 현재를 허기 속에 살아가는 시인의 운명에 경의를 보낸다.(8쪽)
말이 어떻게 놓이는가에 따라 시가 되고 안 되고가 판가름난다. 말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주체의 세계 인식이 달라지고, 이제까지 당연하게 맺어왔던 관계에 변화가 온다. 명명되지 않은 것은 인식되지 않은 것이며, 이미 인식된 것은 새로운 명명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이는 언어의 한계이자 가능성이며, 시의 한계이자 가능성이다. 새로운 인식은 새로운 언어를 낳는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인식을 낳는다. 새로운 언어는 언제나 새로운 시의 질료다. 지금 부르는 이름이 언제나 변치 않는 이름이 될 수 없으므로(名可名非常名, 노자) 인식에도 언어에도 틈이 많다. 그 틈으로 시의 빛이 들어온다.(32쪽)
비평은 창작을 의미 있게 밀고 나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자, 새로운 창작의 전위를 내 안에서 찾아내기 위한 몸부림이며, 아직 오지 않은 시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 단계 같은 것이다. 나에게 비평안(批評眼)은 감상안에서 연유하는 것이며, 비평안은 다시 창작안으로 열려야 하는 무엇일 뿐이다. -「책머리에」에서
출판사 리뷰
동시 동네에 들어선 당신을 마중하는 단 한 권의 동시 평론집!
김소월, 정지용, 윤동주, 백석 등 빼어난 시인들은 시와 동시를 함께 썼다. 쉽고 간결한 언어로 쓰인 동시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두루 즐길 수 있는 문학임에도 불구하고 동화에 밀려 아동문학의 변방에 머물러왔다. 2000년대 이후로 우리 동시가 새로운 중흥의 토대를 다져가고 있음은 분명하나, 여전히 동시 창작층과 비평층이 좁고 이를 수용할 지면과 출판사가 부족한 실정이다. 그 가운데 오롯이 동시만을 다룬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가 출간되었다. 지금의 아동문학 환경에 비추어볼 때 이는 매우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다.
저자 이안은 1998년 『녹색평론』에 「성난 발자국」 외 두 편의 시를 발표하고, 1999년 『실천문학』에 「우주적 비관주의자의 몽상」 외 네 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이자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 『고양이의 탄생』을 펴낸 바 있는 동시인이다. 또한 동시를 향한 애정을 바탕으로 가장 활발하게 비평 활동을 하고 있는 비평가이며,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오늘’의 동시 독자들, 시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동시마중』은 어여쁘고 중요한 실험”이라 평한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그는 “동시 문단의 지형을 바꾸고 동시 부흥의 기틀을 다지는” 장본인인 셈이다.
이안의 첫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는 5년간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 중 35편을 가려 한데 묶은 것으로, 동시를 향한 그의 마르지 않는 애정을 보여준다. ‘지금’ ‘오늘’의 동시를 창작과 비평의 측면에서 읽을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평론서가 절실했던 때에, 이 책의 출간 소식은 동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단비와 같이 반가운 일이리라. 밝은 시안(詩眼)으로 가려낸 좋은 동시들과 이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까지, 저자의 수고가 담긴 이 책이 빛나는 까닭이다.
동시의 길에서 만난 모든 벗들에게 건네는 인사말
‘맛있는 동시’를 만나러 가는 서른다섯 편의 발걸음
동시집을 펼쳐든 당신―동시를 사랑하는 어른 독자,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학부모, 교사, 동시집 기획?편집자, 아동문학연구자 등―은 이내 수많은 궁금증에 휩싸일 것이다. 좋은 동시란 무엇인지, 동시의 내용과 소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동시 독자인 어린이의 연령과 시적 감수성, 독서력은 어느 정도로 상정해야 할지, 시와 동시의 경계를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 등 대부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쉽지 않은 이 문제들은 동시 동네의 뜨거운 논쟁거리다. 미로와도 같은 길에서 헤매지 않고 그야말로 ‘맛있는’ 동시를 맛보고 싶다면 이 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는 동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감상을 돕는다. 저자는 동시가 다른 장르에 비해 쉽고 단순해 보이지만 “작품이 거느리고 있는 시의 세계”는 결코 “좁지 않다”고 말한다. “단순한 웃음으로 주저앉지 않는” “건강한 웃음의 상상력”을 지닌 시, “금기”에 “도전”하고 “기존의 지배적 관념에 균열을 가하”는 시, “새로운 명명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좋은 동시를 소개한다.
작품은 가슴으로만 쓰는 것도, 손끝으로만 쓰는 것도, 머리로만 쓰는 것도 아니다. 김수영의 말마따나,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작품 감상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하나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온몸, 온 감각으로 자라듯, 입으로, 머리로, 눈으로, 가슴으로, 그리하여 온몸, 온 감각으로 끌어당기듯 하는 것이다.(85~86쪽)
2부 ‘경계의 안과 밖’은 주목할 만한 동시를 엄선하고 2000년대 동시단의 흐름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동시의 자리와 경계, 그리고 그 너머 가능성을 짚는다. 저자는 동시인들이 “관습적 상상력에서 벗어나” 작품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과 “자기 시관”을 부단히 갱신하며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시는 우리의 행복한 문학 유산”이자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가능성”이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미덥게 느껴진다.
시가 아니라 동시이기 때문에 가능한 지점들에 예민하게 주목하고 그것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을 통해 동시는 시의 이상(理想)에 이를 수 있다. 그것은 “아이들이 읽으면 동요가 되고, 젊은이들이 읽으면 철학이 되고, 늙은이가 읽으면 인생이 되는 그런 시”(괴테)의 상태가 아닐까 한다. 시는 그 난해성으로 인하여 좋은 시가 모두 이런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좋은 동시는 이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시보다 넓은 동시의 경계이자 가능성이다.(114~115쪽)
3부 ‘천착과 전망’은 개성적인 언어로 자기 시세계를 성공적으로 일군 동시인들의 작품을 세밀하게 살핀다. 감상 주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청소년 독자들과 소통한 박성우, 사람과 자연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시적 대상을 품어 안은 성명진, 다양한 실험과 모색 끝에 시편마다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이끈 정유경, 발랄하고 거침없는 개성적인 시를 보여준 김개미, 특유의 감각과 가락으로 아이들에게 건강한 삶의 자리를 지어주는 안도현 등의 창작방법을 낱낱이 들여다본다. 작품에 대한 단편적인 비평이 아니라 창작자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우리 동시의 지평을 넓혀 나가게 한다.
우리 동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지금까지가 ‘동시 일반(一般)’의 시기였다면 이제부터는 ‘동시 특수(特殊)’의 시기다. 자기 목소리를 독창적으로 일구어내지 못하면, 개성적인 언어와 세계의 돌파가 보이지 않으면 존립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시인은 많지만 자기 이름을 자기 작품에 새기는 이는 여전히 손으로 꼽을 정도다. 문제는, 다시 문제의식이다. 도약기를 맞은 우리 동시단의 과제다.(225~226쪽)
마지막으로 4부 ‘동시집의 뒷자리’는 김륭, 송찬호, 강정규, 안진영 동시집의 해설을 담고 있다. 각 시인의 개성과 시적 실험, 다양한 해석의 층위와 지점을 짚어줌으로써, 그의 해설은 시와 시인, 시인과 독자, 독자와 시 사이에 징검돌 역할을 한다. 덕분에 독자들은 가볍게 발을 디뎌 동시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
더 적게 말하는 것으로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것이 바로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시만의 특징이자 전략인 셈인데, 이는 우리 동시에 크게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 너무 많이 말해서 독자의 입을 봉해버리고 껴들고 싶은 욕구를 허용치 않는 것. 시를 읽는다는 건 시인이 남겨둔 여백과 여지에 깃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시 독자의 행복이다.(299쪽)
동시 동네의 골목골목을 누벼온 그의 글이 동시 길에 들어선 독자들을 마중한다. 동시를 쓰는 이에겐 어떤 방향으로 자기 시세계를 밀고 나갈 것인가에 대한 나침반이, 동시를 읽는 이에겐 동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 동시 감상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좋은 길동무가 될 것이다.
예스 24 에서 헌화가
요즘 우리 동시의 경계를 가장 넓히고 있는 사람은 이안 시인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까닭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을 창간했다. 그 동안 동시는 시보다 못한 장르라는 대접을 받으며 발표 지면도 변변치 않았다. 그런데 동시만을 전문으로 하는 잡지를 만들어 동시를 제대로 대접하고 있다. 서울이 거의 모든 권력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충주라는 지역 한계를 극복하고 점차 구독자를 늘리고 있으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월간지《어린이와 문학》필자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 동시 세미나에 참여하거나 연희목요낭독극장을 공동 주최하는 등 동시인들과 함께하며 활동 영역을 한껏 넓히고 있다.
시인은 독자들과도 활발하게 만나고 있다. 학생들을 직접 만나 시를 가르치고 즐기거나, 권태응어린이시인학교를 열어 어린이들과 함께 뒹굴거린다. 동시 강연을 해 달라는 곳은 가깝고 멀고를 가리지 않고 달려가고, 최근에는 두 달에 한번 ‘동시 톡톡’이라는 행사를 기획하여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온라인 활동도 활발하다.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는가 하면, 페이스북에 거의 날마다 글을 올리고 있다. 이런 저런 잡지에 글을 올리는 것은 기본일 테고, 내가 알지 못하는 활동도 여럿일 테다.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안 시인이라는 예외적 존재 덕분에 우리 동시 세계가 훨씬 풍요로워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시인이 우리나라 최초의 동시 평론집을 내기에 이르렀다. 동시평론상을 만들기도 했던 시인은 최근 5년 동안 동시에 관한 발언을 꾸준히 해 왔다. 평론집은 그 성과물인 셈이다. 시인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동시 경계의 확장이다. 시인은 평론가를 자처하지 않는다. 자신의 “비평은 창작을 의미 있게 밀고 나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자, 새로운 창작의 전위를 내 안에서 찾아내기 위한 몸부림이며, 아직 오지 않은 시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 단계 같은 것이다. 나에게 비평안(批評眼)은 감상안에서 연유하는 것이며, 다시 창작안으로 열려야 하는 무엇일 뿐”(「책머리에」)이라며 새로운 동시의 창작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밝힌다. 평론집을 내지만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서른 중반까지 동시를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 모임’을 하면서도 동시는 시에 실패한 사람들이나 하는, 유치하고 열등한 장르라고 알았다고 한다. 그러다가『겨레아동문학선집』9, 10권(보리, 1999)을 읽으며 처음으로 동시에 떨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시인이 아들을 키우면서 함께한 시간은 동시와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였으리라. 그러나 시인은 이미 시집을 내고 주목을 받고 있었다.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단계였다. 그러한 때에 동시를 시작했으니 시인으로서는 동시에 대한 기존의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외부자이면서 내부자인 경계인으로서의 좌표가 새로운 동시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시인이 거듭 강조하는 새로운 동시는 “먼저 시가 되어야 하고, 그 위에 다시 동시가 되어야 한다.”는 이오덕 선생의 주장이다. 권태응 선생에게서 보이는 시인으로서의 자의식도 강조한다. 시인이 보기에 우리는 그 동안 일반적 통념에 기대에 동시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우리 동시 문학사에는 동시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빼어난 동시가 적지 않게 창작되어왔다. 그렇지만 동시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실험, 문제의식을 지닌 다양한 동시가 나와야 한다고 한다. ‘이런 것이 무슨 시야?’가 아니라, ‘이런 동시도 있을 수 있구나!’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동시가 우리의 행복한 문학 유산이자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시가 아니라 동시이기 때문에 가능한 지점들에 예민하게 주목하고 그것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을 통해 동시는 시의 이상(理想)에 이를 수 있다. 그것은 “아이들이 읽으면 동요가 되고, 젊은이들이 읽으면 철학이 되고, 늙은이가 읽으면 인생이 되는 그런 시”(괴테)의 상태가 아닐까 한다. 시는 그 난해성으로 인하여 좋은 시가 모두 이런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좋은 동시는 이 역할을 해낼 수 있다. 동시는 어린이부터 청소년, 노인까지를 독자층으로 한다. 이것이야말로 시보다 넓은 동시의 경계이자 가능성이다.
어떤 것은 동시이면서 시로 올라가고 어떤 시는 시이면서 동시로 내려온다. 둘 다 진경이다. 동시로 보자면, 동시가 시와의 경계를 넘어 또 다른 시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 지점을 보고 싶다. (114-115쪽)
시인은 동시의 경계를 넓히자는 주장에 실제 비평을 통해 설득력을 더한다. 보통 비평은 외국의 미처 소화되지 않은 이론들을 인용하여 어려운 용어가 난무하고 문장 또한 난삽한 것이 태반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고 술술 읽힌다. 스스로의 안목으로 비평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 가장 주목하는 동시인은 송찬호 시인이다. 송찬호 시인은 시와 동시의 세계 양쪽에 발을 담그고 있는데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송찬호 시인의 「달팽이」 전문을 세 번이나 인용하고 있고, 『저녁별』의 해설과 창작방법에 관해 각각 글을 썼다. 첫 동시집에 이렇게 깊은 애정을 쏟는 까닭은 “개별 시편의 문학적 성취”와 “한 권의 동시집으로서 갖추고 있는 일관성”, 그리고 “요즘 아이들의 눈높이를 세심하게 배려하여”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시이면서 시로 올라가고 시이면서 동시로 내려와 시의 경계를 넓히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의 경계를 넓히며 지금 여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시인들이 또 있다. 사람과 동물과 식물을 따스하게 품어 안는 성명진 시인, 시와 삶이 어긋나지 않고 동시와 시가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고투해온 남호섭 시인, 여성적 감성을 전면화한 정유경 시인, 이제까지의 동시와는 좀 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동시의 맛을 보여주는 김개미 시인, 관습적 상상력에 맞서 밥풀의 상상력을 한껏 밀고 나간 김륭 시인이 그들이다. 김환영 김응 민경정 같은 동시인들, 그리고 동시집을 낸 신경림 김용택 안도현, 함민복 이정록 최명란 유강희 시인 외에 윤제림 이면우 정진규 시인에게도 관심을 두고 있다. 이안 시인이 애정과 관심을 두고 있는 시인과 작품을 보고 있으면 시인이 주장하는 새로운 동시에 대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안 시인은 우리 동시 문학사의 사건이다. 현재 진행형이라서 더 믿음이 간다. 앞으로도 이제까지의 행보를 이어가며 계속 동시의 경계를 넓힐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믿음의 한편에는 바람도 있다. 책에는 동시의 수용에 관해서는 별로 이야기가 없다. 청소년 시에 대한 청소년 독자의 반응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어린이 없는 동시는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창작과 유통 환경이 좋아지더라도 어린이들이 수용하지 않으면 생명력을 지닐 수 없다. 따라서 어린이 독자의 반응을 현장에서 확인하며 그것이 동시에 반영이 되어야 한다. 동시는 끊임없이 실제 독자인 어린이와 상호 작용을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가 동시의 참맛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써야 하고 그것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들이 외면할 요소는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이무완 시인의 지적, 「동시집 ‘해설’, 누구한테 주는 글인가?」(《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2013년 12월) 같은 얘기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안 시인에게 거는 믿음과 바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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