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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은 용의 홈 타운 - 최정례, 2015년 미당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들

moon향 2015. 9. 29. 19:55

2015년 미당문학상 수상작

개천은 용의 홈 타운

 

     최정례

 

 

 

  용은 날개가 없지만 난다. 개천은 용의 홈 타운이고, 개천이 용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날개도 없이 날게 하는 힘은 개천에 있다. 개천은 뿌리치고 가버린 용이 섭섭하다? 사무치게 그립다? 에이, 개천은 아무 생각이 없어, 개천은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뿐이야.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용은 벌컥 화를 낼 자격이 있다는 듯 입에서 불을 뿜는다. 역린을 건드리지 마, 이런 말도 있다. 그러나 범상한 우리 같은 자들이야 용의 어디쯤에 거꾸로 난 비늘이 박혀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있나.

 

  신촌에 있는 장례식장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햇빛 너무 강렬해 싫다. 버스 한 대 놓치고, 그 다음 버스 안 온다, 안 오네, 안 오네…… 세상이 날 홀대해도 용서하고 공평무사한 맘으로 세상사 대하자,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문득 제 말에 울컥, 자기연민? 세상이 언제 너를 홀대했니? 그냥 네 길을 가, 세상은 원래 공정하지도 무사하지도 않아, 뭔가를 바라지 마, 개떡에 개떡을 얹어주더라도 개떡은 원래 개떡끼리 끈적여야 하니까, 넘겨버려, 그래? 그것 때문이야? 다행히 선글라스가 울컥을 가려준다 히히.

 

  참새, , 모기, 벼룩, 이런 것들은 4대 해악이라고 다 없애야 한다고 그들은 믿었단다. 그래서 참새를 몽땅 잡아들이기로 했다지? 수억 마리의 참새를 잡아 좋아하고 잔치했더니, 다음 해 온 세상의 해충들이 창궐하여 다시 사해는 해충의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 않니,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어, 영원히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 해도 넌, 벌컥 화를 낼 자격은 없어.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 타운, 그건 그래도 괜찮은 꿈 아니니?

 

 

                  —《현대시학2014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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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당문학상 후보작들


디아스포라

 

 

   김 안

 

 

 

어머니, 당신은 나의 말 바깥에 계십니다. 그곳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이곳의 하루는 멀고 지옥은 언제나

불공평합니다. 어제까진 입을 벌리면 눈먼 벌레들

쏟아지더니 오늘은 모래뿐입니다. 나는 죽은 쥐의 가면을 쓴 채

부푼 샅에 손을 넣고선 나의 오래된 방이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립니다.

어머니, 당신은 나의 모어(母語)로는 쓸 수 없는 것들입니다.

꽃밭에는 꽃이 피었습니다. 꽃은 여전토록 아름답습니다.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나는 쓸 수 없습니다. 저 꽃을 어떻게 죽여야 합니까?

그러나 당신은 이토록 아름다운 붉은 꽃들을 토하며 어디에서든 나타납니다.

어머니, 당신의 모국어는 너무나 낯설고, 매일이 사육제인 것처럼

나의 말 바깥에서 웅얼거리는 모국어의 서늘한 빛살이 간절하게

방 안으로 쏟아집니다. 하지만 이곳의 생활에도

나름의 규칙과 나름의 관계들이 있습니다. 매일 밤 나의 말을 받아 적고 있는

또 한 명의 어머니는, 또 누구입니까? 내 말의 본향은, 어디입니까? 나는 누구의 모어와

관계하고 있는 겁니까?

 

                    —《현대시학201411월호



 

호명

 

     김이듬

 

 

 

  당신이 부르시면

  사랑스런 당신의 음성이 내 귀에 들리면

  한숨을 쉬며 나는 달아납니다

 

  자꾸 말을 시켰죠

  내 혀는 말랐는데 

 

  마당에서 키우던 개를 이웃집 개와 맞바꿉니다 그 개를 끌고 산으로 가 엄나무에 매달았어요 마당에는 커다란 솥이 준비 되었어요 버둥거리던 개가 도망칩니다 

 

  이리 와 이리 와

  느릿한 톤 불확실한 리듬

 

  어딘가 숨었을 개가 주인을 향해 달려갑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을 향해 사랑이라 믿는 걸까요 날 이해하는 사람은 나를 묶어버립니다 호명의 피 냄새가 납니다

 

  개 주인은 그 개를 다시 흥분한 사람들에게 넘깁니다 이번엔 맞아죽을 때까지 지켜봅니다 

 

  평상에서 서로 밀치고 당기는 사람들

  비어가는 접시와 술잔

  빈 개집 앞에 마른 밥 몇 숟가락 

 

  아버지는 나를 부르고 나는 지붕 위로 올라갑니다 옥수수 밭 너머 신작로가 보입니다 흐르는 구름 너머 골짜기 개구리 소리밖에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동경하지 않아요 

 

  당신이 부르시면 

  날개 달린 당신이 부르셔도

 

 

         —《애지2014년 가을호

 

 

 

  11 


 

     김행숙

 

 

   공중으로 날아가는 풍선을 보면 신비롭습니다. 손바닥만한 고무풍선에 공기를 모으면 점점 부푸는 것. 점점 얇아지는 것…… 꼭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을 놓치면 영영 잃어버리는 것……

 

   추운 겨울밤 손바닥을 오므려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길거리의 가난한 사람들이 지붕 위로 둥둥 떠오를 거예요. 이들은 언젠가부터 마음에 공기가 가득해진 사람들이었어요. 지붕 위에서 수레를 잃은 노점상과 지갑을 잃은 취객이 대화를 나누는 중이에요. 두 사람은 허공에서 잠시 얼어붙은 허깨비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르겠습니다."

 

  "형씨, 혹시 담배 가진 거 있습니까?"  추운 겨울밤 손바닥을 비벼서 불을 피울 수 있다면……

 

  우리는 저마다 기다란 불꽃 같을 거예요. 우리가 감추는 꼬리처럼 공중으로 날아가는 재를 보면 오늘이 11일 같습니다. 작년 이맘때도 꼭 이랬어요. 그날도 나는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구걸을 했어요. 아침에 본 거울처럼 그가 나를 슬프게 건너다보고 있었어요.

 

                 

          —《문학동네2015년 봄호

 

 

 

칠백만원

 

   박형준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식구들 몰래 내게만

이불 속에 칠백만원을 넣어두셨다 하셨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불 속에 꿰매두었다는 칠백만원이 생각났지

어머니는 돈을 늘 어딘가에 꿰매놓았지

대학 등록금도 속곳에 꿰매고

시골에서 올라왔지

수명이 다한 형광등 불빛이 깜빡거리는 자취방에서

어머니는 꿰맨 속곳의 실을 풀면서

제대로 된 자식이 없다고 우셨지

어머니 기일에

이제 내가 이불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얘기를

식구들에게 하며 운다네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이불 속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내 사십 줄의 마지막에

장가 밑천으로 어머니가 숨겨놓은 내 칠백만원

시골집 장롱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불 속에서 슬프게 칙칙해져갈 만원짜리 칠백 장

 

 

          —《녹색평론20157-8월호

 

 산책자 보고서

 

  신용목

 

 

 

어쩌면 허기진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지붕의 망치질 소리로 비가 온다
지붕을 뚫지 못해 빗방울은 대신하여 빗소리를 집 안으로 내려보낸다

 

이제는 그만 굴러 떨어지고픈 그림자를 간신히 붙들고 있는 비탈의 오래된 집

 

끓는다는 말 속에는 불꽃의 느낌이 숨어 있다 비 오는 날 지붕이 끓는 것처럼
냄비 바닥의 불꽃 속에 숨어 있는 빗소리의 느낌을 라면 가닥으로 삼킨다는
말 속에는 또 비처럼 흘러내리는 몸의 느낌이 있다

 

나의 몸은 비를 대신하여 집 안에 고여 있다

 

나는 비의 느낌으로 숨어 있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한사코 지붕에 부딪치는 빗방울을 지운다 바닥에 누운 나는 한사코 바닥에 차는 빗소리를 지운다
빗방울의 시간은 빗소리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빗소리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나는 온통 허기일 뿐

하루는 그 간격을 오가는 시간으로 더 먼 곳의 시간들을 지우고 있다

 

산책은 자전의 느낌이다 하루를 대신하여 라면을 먹고 나는 나를 지웠다
시간의 반대편으로 뻗는 그림자로부터 간신히 몰락을 지우는 망치질까지

 

나는 모든 말의 느낌으로 살아 있다

 

 

               —《애지2014년 겨울호

 

 

잉어

 

   유홍준

 

 

 

너의 입속에 혀를 밀어 넣지 못해,

 

잉어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돈다

 

물고기에게 지느러미가 달린 이유는

입 밖으로

혀가 내밀어지지 않았기 때문

 

돌 위에 새겨진 잉어

탁본 떠서

너를 잊을 때까지 바라본다 겨울 내도록 바라본다

 

너의 입속으로

혀를 밀어 넣지 못해

 

입 밖으로 혀가 내밀어지지 않는 잉어의 눈동자는 동그랗다

       

                —《작가세계2014년 여름호

 

 

 

셔츠에 낙서를 하지 않겠니

 

   이수명

 

 

 

오늘 하나씩 천천히 불 켜지는 거리를 걸어보지 않겠니

하늘을 위로 띄워보지 않겠니

부풀어 오르는 셔츠에 재빨리

우리는 죽었다고 쓰지 않겠니

 

풍경을 어디다 두었지 뭐든 뜻대로 되지 않아

풍경은 우리의 위치에 우리는 풍경의 위치에 놓인다.

너와 나의 전신이 놓인다.

 

날아다니는 서로의 곱슬머리 속에 얼굴을 집어넣고

한 마디의 말도 터져 나오지는 않을 때

하나씩 천천히 불을 켜지 않겠니

 

나란히 앉고 싶어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는 사건을

 

흉내내고 싶어

오늘을 다 말해버린다. 오늘로 간다.

오늘로 가자

 

오늘이여 영 가버리자

 

너를

어디에 묻었나

 

어두운 낙서를 같이 하지 않겠니

빠르게 떠내려가는 하늘 아래

방향을 바꿀 줄 모르는

아무 것도 모르는 티셔츠를 한 장씩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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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끝별

 

 

 

내가 맨발이었을 때 사람들은 내 부르튼 발아래 쐐기풀을 깔아놓고 손가락 휘슬을 불며 외쳤다

 

춤을 춰, 노랠 불러, 네 긴 밤을 보여줘!

 

봄엔 너도 피었고 나도 피었으나 서로에게 열리지 않았다 나는 너의 춤과 노래가 되지 못했고 너는 투덜대며 술과 공을 찾아 떠났다

 

가을에도 우리는 쌓이지 않았다

 

가까이 온 발자국은 너무 크거나 무거웠으며 멀리 간 발자국은 흐리거나 금세 흩어졌다

 

헤이, 춤을 춰, 네 발을 보여줘! 여름내 우는 발은 지린 눈물냄새를 피웠고 겨우내 우는 발은 빨갛게 얼음이 박혔다

 

중력에 맞서면서부터 눈물을 흘렸으리라

 

두 발이 춤 아닌 날갯짓을 했을 때 보았을까 발아래가 인력의 나락이었고 애초에 두 발이 없었다는 걸

 

너를 탓할 수 없다 따로 울지 않으려 늘 우는 발을 탓할 수도 없다 대개가 착시였고 업으로서의 대가였다

 

바닥의 총합이 눈물의 총량이었다

 

 

                  —《유심20149월호

 

 

 

 

  로즈가 로즈로 살던 집 로즈

 

    함기석

 

 

  로즈는 장미가 아니어서, 지붕이 불탄다

  울타리가 타고

  울타리라는 울타리로부터 불길이 솟고

  잠든 로즈가 탄다

 

  잠이 타고 살이 타고

  심장의 고동도 목소리도 맥박도 다 타 재가 되고

  입술은 날개가 되어

  가시 끝에 말라붙어 소리 없이

  탄다

 

  이름이 타고

  귀가 타고 눈이 타고 손발이 타고

  이제 아무도 너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뜻을 새기지 않는다

 

  마른 육체에 남은 시간이 타고

  모든 기억들이 타고, 로즈의 뿌리는 죽은 자의 발이 되어

  땅 속에 축축이 묻힌다

 

  로즈가 로즈로 살던 집 로즈, 기둥이 타고

  숨 막히던 숨이 타고

  뒤틀린 꽃잎들은 한마디 비명도 외침도 통곡도 없이

  대기의 침묵 속으로 날아간다

 

  이제 가까스로 나는 검은 자유에 근접한다

  검의 새의 몸에 피처럼 스민다

  아무도 본 적 없는

  부리도 꼬리도 발도 날개도 없이 유랑하는 새

 

                   

                —《문학. 2014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