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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살이 - 박두순

moon향 2015. 4. 17. 18:00

 

 Ivan Konstantinovich Aivazovsky

귀양살이

- 보길도에서

 

 

                                 박두순

 

 

누가 나를 귀양 보내주면 좋겠네

거저 밥 먹이고 재워주니 얼마나 좋으랴

윤선도처럼 어부사시사 닮은 대작이나 쓰게

 

보길도에 와서 우습게도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귀양 갈 수 없는 인물임을 알았다

내 안에 든 게 뭐 있어야지.

 

물결은 왜 저리도 이랑마다 반짝이고

기슭은 왜 파도를 안아 어르는지

그런 것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

 

귀양은 아무나 가나

죄 없는 자가

새 소리 물소리와 어울려 살라고 보내는 것이다

죄 없는 자라야 그 소리를 듣는다.

 

아직 나는 귀가 어두워

내 발밑에와 몸부림하는 파도와

바다의 고민을 알지 못한다

뜰을 다녀가며 꽃봉오리를 여는

바람 소리의 매듭 하나 읽지 못한다

 

때문에 나는 내 안에

갇혀 살 수밖에 없다

내 안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