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교
- 유홍준
내 아버지의 종교는 아교,
하루도 아니고
연사흘 궂은비가 내리면
아버지는 선반 위의 아교를 내리고
불 피워 그것을 녹이셨네 세심하게
꼼꼼하게 느리게 낡은 런닝구 입고 마루 끝에 앉아
개다리소반 다리를 붙이셨다네
술 취해 돌아와 어머니랑 싸우다가
집어던진 개다리소반……
살점 떨어져나간 무릎이며 복사뼈며
어깻죽지를 감쪽같이 붙이시던 아버지, 감쪽같이
자신의 과오를 수습하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 내 아버지의 종교는 아교!
세심하게 꼼꼼하게 개다리소반을 수리하시던
아교의 교주 아버지 보고 싶네
내 뿔테안경 내 플라스틱 명찰 붙여주시던
아버지 만나 나도 이제 개종을 하고 싶다 말하고 싶네
아버지의 아교도가 되어
추적추적 비가 오는 아교도의 주일날
정확히 무언지도 모를 나의 무언가를 감쪽같이 붙이고 싶네
유홍준 / 1962년 경남 산창 출생. 1998년《시와 반시》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나는, 웃는다』『저녁의 슬하』, 시선집『북천-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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