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유언처럼 말하겠습니다
- 이충기
입 안에서 아낀답니다
감사하는 말
마음속에서 간직한답니다
고맙다는 말
누군가가 묻습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네 속을 어찌 알겠느냐고요
나는 대답합니다
고마움이 태산만하고
감사함이 하늘만하니
이를 어찌 짧은 단어 한 두마디 말로써
죄다 나타낼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태산이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하늘이 산산조각 난다고 해도
나는 말하고 또 말할 것입니다
염불하듯이 기도하듯이
내 마음을 몰라주어도
돌부처같이 그저 묵묵히 있겠습니다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감사할 줄 모른다고 치부당해도
그냥 웃고 말겠습니다
목욕탕에 나를 데려다 놓고
내 뱃속에 든 것을
손으로 뽑아내며
머리에서 발끝까지
말끔하게 씻겨 주는
내 가까운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 쉽게 못합니다
감사하다는 말 함부로 못합니다
훗날 내 삶의 마지막 날에
최후의 한마디만
겨우 할 수 있는 시각에
유언처럼 말하겠습니다
그때
정말 태산이 무너져 내리도록
정녕 하늘이 산산조각 나도록
크나큰 울림으로
고맙다고 말하겠습니다
감사하다고 말하겠습니다
"마음이 쓸쓸한 그대에게 이 시집을 드립니다."
그의 두 번째 시집 <내 아픈 사랑을 위하여> 표지에 쓰여진 글입니다.
이충기 시인은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을 잃고 오랫동안 누워서 살아오신 분.
엄지와 검지, 그리고 입을 모아 쓴 시인의 유서 같은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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