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뚱한 펭귄처럼 걸어가다 장대비 맞았어 - 박세랑

moon향 2018. 9. 25. 09:53

 

뚱한 펭귄처럼 걸어가다 장대비 맞았어

 

난 웃는 입이 없으니까 조용히 흘러내리지
사람들이 웅덩이를 밟고 지나가
더 아프려고 밥도 꼬박꼬박 먹고 알약도 먹어
물처럼 얼었다 녹았다 반복되는 하루
친구라도 만들어야 할까? 우동 먹다 고민을 하네
무서운 별명이라도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약 먹고 졸린 의자처럼 찌그덕삐그덕 걷고 있는데
사람들은 화가 나면 의자부터 집어던지네
난 뾰족하게 웃는 모서리가 돼야지
살아본 적 없는 내 미래를 누가 부러뜨렸니!
약국 가서 망가진 얼굴이나 치장해야지
뒤뚱뒤뚱 못 걸어야지

난 은밀한 데가 조금씩 커지고 있어
몸은 축축해 곰팡이가 넘치는 벽이 되려고 해
사람들이 깨트리기도 전에
계란프라이처럼 하루가 누렇게 흘러내리고
탱탱하게 익어가는 구름들아 안녕
누가 좀 만져주면 좋겠지만

뚱하게 걷다보면 장대비가 내리고
집에 뛰어들어가도 계속 비를 맞는다

터진 수도관을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 난 자꾸 흘러넘치는데 바닥을 닦아낼 손이 안 보이는데

갈 데가 없어 혼자 미끄럼틀을 타면
곁을 지나가던 어깨들이 뭉툭 잘려나가지
떨어진 난, 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겠지만 

 

 

- 박세랑, 문학동네신인상 당선자

 

"작품 안에서 계속 살고 있는 것 같아요"

 ㅡ 시 쓰는 박세랑 & 소설 쓰고 책 만드는 정영수 인터뷰

진행 온모밀(a.k.a. 정영수), 사진 GON, 정리 자노아


 

 


 
등단 소식을 들었을 때 상황이 궁금합니다.
- 학원에서 수업하고 있었어요. 여름방학 시즌이라 결석한다는 전화가 많이 오는데, 그날도 학부모 전화겠거니 하고 받았어요. 소식 듣자마자 제가 너무 많이 울어서 수업 듣던 아이들이 엄청 당황하더라고요. 직장 동료들도 굉장히 신기해하고, 학부모님들도 응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전화 받고 나서 누구에게 처음으로 알렸어요?
- 엄마요. 그리고 소울메이트 친구 제재에게 제일 먼저 알렸어요.  


엄마가 시 쓰는 거 좋아하세요?
- 대학 진학했을 땐 좋아하셨는데, 진전이 없으니까 나중에는 좀 반대하셨어요. 생계도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대학원 진학은 못하고 바로 취업했어요. 부모님께서는 글쓰는 것에 대한 지원을 많이 못해주셨다고 생각하셨는지 저한테 많이 미안해하셨어요. 그런데 이번 기회에 부모님께 자식으로서 도리를 하게 된 것 같아 정말 뿌듯해요.   

 
같이 시 쓰는 모임이 있나요?
- 학교 선배 둘이랑 친구랑 저 이렇게 넷이서 열심히 쓰고 있었어요. 

그중에 제일 먼저 등단한 거예요?
- 네, 다들 좋아했어요. 그런데 저 당선된 이후로 다들 슬럼프에 빠져서… 다들 제가 당선될 거라고 예상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제가 심적으로 많이 무너졌을 텐데 그들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두고두고 그 빚을 갚아나갈 생각이에요. 

 


원래 첫 질문은 이걸 적어왔었어요. 잠들기 전에 무슨 생각 하는지. 
- 저는 자기 직전에 항상 시를 쓰기 때문에, 시에 얽매여 있다가 잠들어버려요. 그래서 악몽을 많이 꿔요. 잠들기 전에도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도 시를 쓰거든요. 작품 안에서 계속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시는 어떤 방식으로 써요?
- 저는 한 호흡으로 다섯 편 정도 써내려간 뒤에 이 주, 삼 주 계속 퇴고하는 방식으로 써요. 다듬는 과정 속에서 논리를 갖추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그 논리가 무너지면 시가 완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다 보면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오기도 하고요. 시를 쓰기 전에 큰 그림을 그리거나 고민하고 시작하진 않아요. ‘예쁜 쓰레기’나 ‘쁘띠 심장마비’같이 좀 특이한 표현을 만나면 거기에 꽂혀서 확 쓰기 시작해요.  

 

수상 소식 듣고 난 뒤엔 어떻게 지내요?
- 일단 지금 일하고 있는 학원 일을 정규직에서 파트타임으로 바꾸었어요. 제가 아기들에게 동화책을 통해서 글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큰 발성으로 하루에 여섯 시간씩 이야기를 하고 집에 오면 너무 힘들어서 숟가락 쥘 힘도 없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점심시간에 십 분 만에 급하게 밥을 먹고 시를 쓰곤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요즘은 조금 여유 있게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시는 어떻게 쓰게 됐어요?
- 시는 고등학생 때부터 썼고, 특기자로 대학에 입학했어요. 제가 진해에서 자랐는데요, 문학 특기자 전형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러다 동네 백일장에 나가게 되면서 실적이 조금씩 나오다 보니까 아, 이렇게 상이 모이면 대학을 갈 수 있는 전형도 있구나 알음알음 알게 됐어요. 담임 선생님이 대학에서 온 공문을 보고 “너 이거 한번 해볼래?” 하신 거예요. 그렇게 시험 보고 1등한 덕에 특차로 대학에 붙었어요. 그 시험 본다고 처음 서울에 올라와봤어요. 뭘 잘 모르고 올라와서 그랬는지 떨리진 않았어요. 시제는 ‘바람’이었어요.

그럼 시를 십 년 넘게 쓰고 있는 건데, 이렇게 오래 열심히 쓰게 되는 동력이 뭐예요?
- 시를 정말 좋아했어요. 학창 시절에 학교를 잘 안 나갔어요. 공교육 시스템이랑 제가 잘 맞진 않아서요. 그때 저를 버티게 해준 게 문학이었어요.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었어요. 집에서도 제가 졸업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출석 일수가 모자라 대학도 못 갈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제가 좋아했던 시 덕분에 대학에도 입학하고, 대학 들어가 시에 대해 공부하다보니 너무 좋더라고요. 그러고 이십대 중반에 몇 년간 몸이 굉장히 안 좋았는데, 그때도 시가 삶을 버티게 해준 것 같아요. 시를 한 편 쓰고 나면 삶의 기운 같은 게 그만큼 차오르더라고요.

공모전에 꽤 오래 도전하고 떨어지고를 반복했는데, 시가 싫어지진 않았나요?
- 시가 잘 안 나와서 억울하지 시가 쓰기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낙방할 때마다 울고불고 곡기를 끊을 정도로 힘들어했어요. 시 쓰는 게 정말 좋아서 온 마음을 다해 준비하고 도전했었거든요. 그때 곁에서 저를 지켜준 고마운 친구 제재가 있었기에 모든 시간들을 관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삶을 포기하지 않게 인간에 대한 믿음을 준 제재라는 친구 덕분에 제 시가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박세랑 시인에게 영향을 준 시인이 있다면?

 

- 김혜순 시인이요. 여성으로서 이 땅에 발붙이고 산다는 게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힘을 실어준 시집이 김혜순 시인의 시집이에요. 김행숙, 김이듬, 정한아 시인 같은 여성 시인의 시를 사랑해요.

어릴 때 쓰던 시랑 지금 쓰는 시가 많이 다른가요?
- 네, 스물네 살을 기점으로 확 바뀌었어요. 그전에는 밝고 발랄한 시가 많아서 동시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시를 눌러주는 묵직함이 전엔 좀 부족하다 생각했는데, 삶에서 오는 아픔이나 고통이 자연스럽게 시를 눌러주는 무게감이 되어간 것 같아요.

 

투고할 때부터 「뚱한 펭귄처럼 걸어가다 장대비 맞았어」를 맨 앞에 뒀어요?
- 아뇨, 저는 「물속에서」를 맨 앞에 뒀어요. 그런데 당선되고 보니까 이 「뚱한 펭귄-」한테 너무 고맙고 이 시가 너무너무 좋아요. 이 시는 제목부터 정해놓고 쓴 시예요. 제가 ‘뚱한 펭귄’이라고 생각하고 쓴 시고요. 퇴고도 정말 오래했어요.

아, 유튜브 크리에이터로도 활동 시작했지요?
-네, 아이들에게 구연동화 들려주는 내용으로요. 유튜브에서 ‘젤리몬즈 세랑쌤의 구연동화’로 검색해주세요. ‘세랑쌤’만 입력하셔도 돼요. 콘텐츠 구성하고 대본 쓰는 건 제가 하고, 촬영이랑 편집은 젤리몬즈에서 해주시고요. 동화 구연 수업을 해보니까 동화가 아이들한테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아이들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아이들이 이 좋은 동화들을 공평하게 다 접하며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일하는 대치동은 부유한 집 아이들이 많다보니, 이전에 일하던 저소득층 아이들과 누리고 접하는 문화적인 격차가 정말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유튜브는 누구나 볼 수 있으니까요. 저소득층 아이들은 학원에 가지 않고 유튜브를 보는 경우가 더 많고요. 동화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기르는 데 필수라고 굳게 믿어요. 그래서 유튜브 콘텐츠로 많은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싶어요.


젤리몬즈 세랑쌤의 구연동화 앤서니브라운 동화 작가 소개편

 

동화를 쓸 생각도 있어요?
-네, 지금 쓰고 있어요. 그림도 그리고 있고요. 그라폴리오에서 ‘박자몽(www.grafolio.com)’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선물하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어떤 시인이 되고 싶어요?
- 오래오래 쓰는 시인. 오래오래 고민하고, 오래오래 쓰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시인이요. 제가 시를 통해 살아갈 의지를 얻었듯이, 누군가에게는 ‘이런 사람도 있는데, 너도 견딜 수 있어’라고 우회적으로 전할 수 있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serang59@naver.com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꾸준히 하고 있어요.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긴다면 전문적인 키즈 산업을 해보고 싶어요. 제가 계속 해온 일이 그런 거라서요.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꾸준히 해왔으니까. 올바른 교육 콘텐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가진 달란트를 하나님 나라를 알리는 데 사용하고 싶어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리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詩 詩 詩.....♡ > 떠 오 르 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민지의 국어시간 - 문병란  (0) 2018.10.09
해질녘 - 채호기  (0) 2018.07.02
고향 열차 - 윤중목  (0) 2018.05.10
9H - 홍일표  (0) 2018.04.27
기도1 - 서정주  (0) 2018.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