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 곽해룡
펑펑 눈 내리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산타 할아버지가 정말 있다고 믿는
나영이네 집에 도둑이 들었다
엄마 아빠가 없는 것처럼
산타도 하느님도 사람들이 다 지어낸 거라고
나영이를 울려서 재운 할머니와
잠든 척 눈을 감고 있다가
할머니 몰래 일어나 현관문을 열어 놓은 나영이가
쌔근쌔근 잠든 틈을 도둑은 놓치지 않았다
살금살금 부엌으로 간 도둑은 쌀독을 슬며시 열고
독안에 가득 찬 공기를 들여다보았다
쌀 냄새가 잘 밴 공기를 보자 도둑은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가슴이 콱 막혔다
공기는 바가지로 훔칠 수 없어서
도둑은 가지고 온 쌀자루를 풀어
독 안에 부었다
쌀을 부어 넣자 잘 익은 공기가 몽땅
독 밖으로 밀려 나왔다
자루 가득 공기를 훔친 도둑은
조심조심 나영이네 집을 빠져나왔으나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
컹컹 개 짖는 소리처럼 쫓아왔다
도둑하고 한 패인 하느님이
하얀가루를 마구 뿌려
발자국들을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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