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 김행숙

moon향 2016. 12. 3. 22:14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 행숙


 신발장의 모든 구두를 꺼내 등잔처럼 강물에 띄우겠습니다
 물에 젖어 세상에서 가장 무거워진 구두를 위해 슬피 울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신발이 없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는 국가도 없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그 곁에서 밤이 슬금슬금 기어나오고 있습니다
 기억의 국정화가 선고되었습니다
 책들이 불타는 밤입니다
 말들이 파도처럼 부서지고
 긁어모은 낙엽처럼 한꺼번에 불타오르는 밤, 뜨거운 악몽처럼 이것이 나의 밤이라면 저 멀리서 아침이 오고 있습니다
 드디어 아침 햇빛이 내 눈을 찌르는 순간에 검은 보석같이 문맹자가 되겠습니다
 사로잡히지 않는 눈빛이 되겠습니다
 의무가 없어진 사람이 되겠습니다
 오직 이것만이 나의 아침이라면 더 깊어지는 악몽처럼 구두가 물에 가라앉고 있습니다
 눈을 씻어도 내 신발을 찾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서서히 돌부리나 멧돼지가 되겠습니다


 「유리의 존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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