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깐 만.....♡/책 읽 는 시 간

『잠자리 시집보내기』 - 류선열

moon향 2016. 9. 27. 17:23

 

 

 

 

잠자리들이 실컷 날아다니는 가을이에요. 
어렸을 때 들판에서 잠자리 많이 잡았지요...

애들 키우면서 잠자리채 들고 들판으로 자주 나가곤 했답니다.

(잠자리가 모기를 잡아먹는 줄은 모르고 말입니다^^::)

그런데 '잠자리 시집보내기'는 무슨 뜻일까요?ㅎ

류선열(1952~1989)은 청주교대를 졸업했어요.

등단한지 5년 만에 약 60편의 동시를 남겨 둔 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기에 너무 안타깝지요ㅠㅠ

같은 대학을 나온 전병호 시인이 동분서주한 결과로

2002년에 유고 시집 『샛강 아이』가 출간되었대요.

원래는 다른 표지인데 아래 이미지는 2008년도에 나온 책이에요.

 

 

 

샛강 아이

1
송장메뚜기 뜨는 강변에
아이가 섰습니다.

개미귀신 망을 보는 샛강에
아이가 우뚝 서 있습니다.

수백 살 버텨온 바위 벼랑에
억새꽃이 깃발처럼 나부낍니다.
발 밑에 깔린 바람이
옷자락을 붙들고 바둥거립니다.

-새벽에 황톳물에 휩쓸려 가던 누야의
울부짖음 같은 바람, 바람 소리
-아부지이, 아부지이, 아부지이……

강물은 은종이처럼 부서지는데
물 속에서 누야가 하얗게 웃는데
아프면서 크는 샛강 아이는 돌아설 줄 모릅니다.

 

 

2

고추잠자리 뜨는 강변에

아이가 섰습니다.

피라미 떼 모이는 샛강에

아이가 우뚝 서 있습니다.

 

황톳물에 쓸린 쑥부쟁이가

고개를 쳐들고 있습니다.

개흙에 묻힌 메꽃이

분홍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어무이는 흙을 뜨고

-아부지는 벽 바르고

샛강 언덕에 새 집을 짓습니다.

방 둘 부엌 하나 새 집을 짓습니다.

 

누야의 속살 같은 하늘이

차츰 붉어 가는데

굽이굽이 샛강에

불이 붙는데

 

저녁놀 등에 업고

아이는 샛강을 돌아옵니다.

 


류선열의 '샛강 아이'를 읽으면, 기형도의 '안개'가 떠오릅니다.

http://blog.daum.net/yjmoonshot/2494

저는 그를 '아동문학계의 기형도'라고 부르고 싶어집니다!!

 


잠자리 시집보내기는 그가 직접 꾸며 만든 가제본 동시집을 바탕으로

문예지에 발표했던 다른 시를 모아 문학동네에서 출판했습니다.

김효은 님이 삽화를 그린 이 책을 펼치면,

가난하고 쓸쓸한 산골 아이들이 보리피리를 불면서 
'여우야 여우야'나 '순경과 도둑' 놀이를 하자고 와글와글 몰려오는 듯해요. 
동시를 읽으면서 엄마아빠는 어렸을 때 이렇게 놀았단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제는 우리 곁에서 멀어져간 산골의 기억을 
잊어버린 낱말들로 채운 동화 같은 시집이랍니다. 
보리 대궁, 물마루, 국수꼬리, 쇠죽, 동부콩, 똑딱 할멈, 옴칠, 
 조무래기, 미지개, 꽁숫줄 등의 질박한 향토어에 젖어 보세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읽기 좋은 동시집일 것 같아요!^^

옆지기나 친한 친구에게 가을 맞이 선물하면 어떨까요?

'똑딱 할멈'과 '옴칠'은 저도 잘 모르는 이야기에요...^^...

Paul CardallThe Stone Angel을 배경음악으로 했습니다.

어디선가 똑딱 할멈이 똑딱똑딱 나오실려나?

 



 

 

 

호랑이 사냥 - 류선열


뾰릇뾰릇
탱자나무 가시가 돋아요
성은 학교 가고 어무이는 들에 가고
찬장엔 찬밥뿐이니 호랑이 사냥을 가야지요.

어깨엔 작대기 총을 메고
머리엔 개떡모자로 고수머리를 감추고
살금살금 숨을 죽이고 울타리를 나서요.
콧마루를 벌름거리며 호랑이 사냥을 가요.

왼쪽과 오른쪽엔 작약밭
돌다리 건너면 할머니 댁
깃 고운 꼬까물떼새가 날아요.
왜 내겐 날개가 없을까?

메주 냄새 굼뜨는 할머니 방을 열면
여덟 폭 병풍에 호랑이 한 마리
나는 다짜고짜 그놈을 쏘아요.
그러면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호랑이를 잡아 주셨으니 곶감을 드려야지."

 

 

 

※류선열 시인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은 '꼴찌 만세'를 찾아 보세요!

http://blog.daum.net/yjmoonshot/4187 어른들이 모르는 꼴찌의 마음을 알게 될 거예요......

 

『잠자리 시집보내기』 - 류선열, 문학동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