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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별 - 신경림

moon향 2016. 8. 19. 20:26

말과 별

 

 - 신경림 

 

 

나는 어려서 우리들이 하는 말이

별이 되는 꿈을 꾼 일이 있다.

들판에서 교실에서 장터거리에서

벌떼처럼 잉잉대는 우리들의 말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는 꿈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같은

찬란한 별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릴 때의 그 꿈이 얼마나 허황했던가고.

아무렇게나 배앝는 저 지도자들의 말들이

쓰레기같은 말들이 휴지조각같은 말들이

욕심과 거짓으로 얼룩진 말들이

어떻게 아름다운 별들이 되겠는가.

하지만 다시 생각한다.

역시 그 꿈은 옳았다고.

착한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이

망설이고 겁먹고 비틀대면서 내놓는 말들이

어찌 아름다운 별들이 안되겠는가.

아무래도 오늘밤에는 꿈을 꿀 것같다.

내 귀에 가슴에 마음속에

아름다운 별이 된

차고 단단한 말들만을 가득

주워담는 꿈을.

 


- 기행시집 (창작과 비평사, 1990)

 


 이 시는 이른바 땡전 뉴스가 국민의 의식을 지배하려 들었던 군부독재시절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들의 아무렇게나 배앝는’ ‘쓰레기같고 휴지조각같은 말들과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도란도란한 말들과의 비교를 통해 어떤 말들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는 꿈을꾸게 하는지를 대비하여 풍자하였다. 그런데 이 시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분명히 저 지도자들의 말들이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인터넷에 나도는 시들은 모조리 이 대목이 빠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지도자의 의중을 섬기고 받드는 자들에 의해 삭제 혹은 삭제권고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2012년 대선정국 때도 교과서에 실린 도종환 시인의 시에 대해 느닷없이 교육의 중립성 유지를 구실로 정치인의 작품 삭제요구가 있었다. 교육과정평가원이 얼토당토않은 자의적인 규정을 적용해 오히려 교과서의 공정성과 문학의 가치를 훼손하는 우를 범했다. 이에 당시 신경림 시인을 비롯한 문인들의 반발은 거셌다. 안도현 시인은 자신도 문재인 후보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정치적인 행위를 했으므로 교과서에 실린 자신의 모든 작품을 추방해달라고 맞섰다. 보수성향의 소설가 이문열도 작가가 정치적 의도 없이 쓴 작품을 나중에 얻은 신분을 이유로 삭제토록 한다는 것은 창작인의 한 사람으로서 전혀 이해되지 않고 보기에 민망하다며 비판대열에 가세한 뒤에서야 그 불순한 기도는 흐지부지 무산되었다.


 시인의 시에 대해 정치적 편향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엄연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다. 국가 지도자와 공무원들의 졸렬하고 사려 없는 인식이 국격을 천박하게 떨어뜨리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지도자의 이념에 따라 개인의 문화적 삶이 강제되고 깊숙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무수리라는 별칭으로 통하는 조윤선 장관 후보자가 만약 청문회를 통과해 문화부장관이 된다면 또 무슨 희한한 일이 생길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모든 단체나 조직이 다 마찬가지다. 지도자가 어떤 가치관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조직의 흥망성쇠가 달려있고 구성원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


 명나라 때 한 석학은 지도자를 6단계로 분류하여 맨 마지막 최악의 6등급에 해당하는 자는 음험하고, 흉악하고, 올바른 사람을 괴롭히고 조직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아직도 미개국에서는 이러한 국가 지도자가 있고 우리 사회의 여러 단체와 조직에도 이런 부류들이 더러 있다. 대개 오랫동안 군림해오면서 자신이 행하는 언동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다른 이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모를 만큼 마비상태가 지속된 결과다.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진실을 외면하고 독선을 행하는 자의 말은 대개 쓰레기 같은 괴변이다. 그에 비해 오랜 기간 주눅이 든 상황에서 착한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이 망설이고 겁먹고 비틀대면서 내놓는 말들은 얼핏 조금 어눌하고 엉성해 보이지만 진실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을 다 말했을 경우에 받게 될 불이익을 감당하기가 버거워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 엉성함은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순수함은 온갖 수단을 마음껏 사용할 수 없는 불리한 현실을 나타내기도 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인식이 편향되어 있다. 선진외국처럼 바른 사회를 위한 용기 있는 사람이라 추켜세우기는커녕 의리 없는 배신자쯤으로 낙인찍는 일도 있고 보면 나서는 것 자체를 내키지 않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는 인간이 야만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방향으로 전진해야 한다. ‘아무래도 오늘밤에는 꿈을 꿀 것 같다억압과 야만의 시대를 끝내고 아름다운 별이 된 차고 단단한 말들만을 가득 주워 담는 꿈을

 


권순진 블로그에서

 


Dreams - Giovanni Marr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