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에코의 초상, 빛 - 김행숙

moon향 2015. 10. 11. 17:17

 

 

빛 - 김행숙

 

악몽이란 생생한 법입니다

몇몇 악몽들이 암시했고 별빛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저녁노을의 빛과 새벽노을의 빛 사이에 별이 못처럼 꽝꽝 박히고 새파란 초승달이 돋아난 가장 어려운 각도로 서 있습니다

휘청하는 순간처럼 달빛이 검은 천막을 찢고 있었습니다

별이 못이라면 길이를 잴 수 없이 긴 못, 누구의 가슴에도 깊이를 알 수 없이 깊은 못입니다

오늘 밤하늘은 밤바다처럼 빛을 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꿈이 아니라면 이제부터 진짜 악몽이라는 듯이 동쪽에서 번지는 새벽노을이 얼룩을 일그러뜨리며 뒤척입니다, 어디에 닿아도

빛을 비추며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서로서로 빛을 비추며 죽은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어디서 날이 밝아온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에코의 초상 - 김행숙

                   
   입술들의 물결, 어떤 입술은 높고 어떤 입술은 낮아서 안개 속의 도시 같고, 어떤 가슴은 크고 어떤 가슴은 작아서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 같고, 끝 모를 장례행렬, 어떤 눈동자는 진흙처럼 어둡고 어떤 눈동자는 촛불처럼 붉어서 노을에 젖은 회색 구름의 띠 같고, 어떤 손짓은 멀리 떠나보내느라 흔들리고 어떤 손짓은 어서 돌아오라고 흔들려서 검은 새떼들이 저물녘 허공에 펼치는 어지러운 군무 같고, 어떤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꿈에서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영원히 보게 될 것 같아서 너의 마지막 얼굴 같고, 아, 하고 입을 벌리면 아, 하고 입을 벌리는 것 같아서 살아 있는 얼굴 같고,  

 

 

 <에코의 초상>, 문학과지성사

 

 

그냥 좋은 시만 읽다가 생을 다해도 좋겠다.

애써 시를 쓰거나 시를 만들려고 하지 않고

그냥 시만 읽다가 시에 묻혀서 그렇게 가도 좋겠다.

어쩌다가 문학이 좋아 시가 좋아 글이 좋아 이렇게 시를 더듬고 있는 걸까?

프로를 꿈꾸며, 화려한 글쟁이가 되어 보겠다고......

분에 넘치는 욕심일지 내게 알맞은 선택일지는 

아무래도 이생이 다해야 알 수 있을 텐데

현재진행형으로 가고 있는 이 길의 다음 골목은

어디로 향하는지 몰라서 두렵고 불안하다.

어쩌면 시를 이용하려는 속내 때문에

올해는 내게 시가 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못난이는 흑심 조각을 버려야 한다.

작은 랜턴으로 어스름한 빛을 비추며 한 걸음 움직여 본다.

더 환한 빛을 찾아, 별을 보며 달을 향해.

(2015.10.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