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 767

열쇠 - 박두순

열쇠 물 속은 어디나 문이다 말간 물의 문 물의 문은 늘 닫혀 있지 말갛게 말갛게 보이지만 함부로 열지 못하지 열었다 하면 금방 닫히는 물의 문들 물고기가 가장 잘 여닫지 머리로 꼬리로 지느러미로 또 온몸으로 물의 문을 쉽게 여닫지 물고기는 열쇠지 그래서 물 속 집을 차지하고 살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열쇠. 봐, 커다란 군함 조그만 소금쟁이는 열쇠가 없어 물 위에서만 살잖아. 2015년 겨울호

내가 있어서 - 김미라

내가 있어서 / 김미라 흔들어주고 속삭여주고 간질여주고 그런 바람이 없으면 나무가 얼마나 재미없겠니 달려가고 넘어지고 올라가고 그런 바람 재울 날 없는 내가 있어서 우리 엄마 얼마나 재미있겠니. ----------------- “동시로서 원형질적 발견 잘 형상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동시는 동심을 바탕으로 그 위에 세워진 시이다. 따라서 아무리 동심의 눈으로 포착해낸 것이라 하더라도 시가 되지 않으면 동시라 할 수 없고, 또한 훌륭한 시가 되었다 하더라도 동심을 근거로 하지 않으면 동시라 할 수 없다. 말하자면 동시는 어디까지나 아동의 눈이라는 한정된 창(窓)을 통해 발견해낸 새로운 해석, 곧 시여야 한다. 그리하여 전혀 새로운 해석과 울림을 함께 갖췄을 때 좋은 동시라 할 것이다. 동시의 요건을 제대로..

메리 크리스마스 - 곽해룡

메리 크리스마스 - 곽해룡 펑펑 눈 내리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산타 할아버지가 정말 있다고 믿는 나영이네 집에 도둑이 들었다 엄마 아빠가 없는 것처럼 산타도 하느님도 사람들이 다 지어낸 거라고 나영이를 울려서 재운 할머니와 잠든 척 눈을 감고 있다가 할머니 몰래 일어나 현관문을 열어 놓은 나영이가 쌔근쌔근 잠든 틈을 도둑은 놓치지 않았다 살금살금 부엌으로 간 도둑은 쌀독을 슬며시 열고 독안에 가득 찬 공기를 들여다보았다 쌀 냄새가 잘 밴 공기를 보자 도둑은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가슴이 콱 막혔다 공기는 바가지로 훔칠 수 없어서 도둑은 가지고 온 쌀자루를 풀어 독 안에 부었다 쌀을 부어 넣자 잘 익은 공기가 몽땅 독 밖으로 밀려 나왔다 자루 가득 공기를 훔친 도둑은 조심조심 나영이네 집을 빠져나왔으나 눈 위에..

전봇대 - 장철문

전봇대 말라깽이 전봇대는 꼿꼿이 서서 혼자다 골목 귀퉁이에 서서 혼자다 혼자라서 팔을 길게 늘여 다른 전봇대와 손을 잡았다 팔을 너무 늘엿 줄넘기 줄처럼 가늘어졌다 밤에는 보이지 않아서 불을 켜 서로 여기라고 손을 든다 서로 붙잡은 손과 손으로 따뜻한 기운이 번졋 사람의 집에도 불이 켜진다 - (사계절 15)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58289296

중심 - 김현욱

중심 다리 한쪽이 부러진 나무의자 하나 쓰레기장 구석에 기우뚱 서 있다 흔들리지 않고 소리 내지 않고 바르게만 살아온 나무의자 단 한 번 중심을 놓치고 넘어지자 구석으로 오게 되었다 남은 다리로 뒤뚱뒤뚱 제 스스로는 처음 잡아보는 아슬아슬한 중심 하늘 한 귀퉁이가 비스듬히 내려와 나무의자에 기댄다 세상에 없던 중심이 우뚝 서 있다 .............................................. [2010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김현욱 ▒ 약력 ▒ ▷1977년 경북 포항 출생 ▷대구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2007년 진주신문 가을 문예 시 당선 ▷2007년 해양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