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 768

달을 건너기 위한 블루스 - 이태윤

달을 건너기 위한 블루스 - 이태윤 내 몸 가장 어두운 곳으로 가 심장을 켜 놓았다 그러자 심장이 들려주었네 파도와 계단의 형식으로 어딘가 기록되어 있지만 기억나지 않는 당신이 비를 맞고 있다고 머지않아 당신은 내 입술을 빠져 나와 짧은 탄식이 될 것이다 오, 이렇게 지독한 센티멘털에 진저리 치면서 끝없이 몸을 바꾸는 낮과 밤들 그 어딘가로 계단이 통할 거라고 믿었지만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계단은 얼마나 쓸모 없는 것인가 그렇게 쓸모 없어진 계단들이 밀려와 파도가 된다 나는 내가 건강할 때 슬픔을 감당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아파할 순간에 아픔에서 소외되어 버리고 불행 속에서 불행하게 쫓겨나 버렸네 나는 아, 또 이렇게 난감한 멜랑꼴리에 몸서리치며 두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는 슬픔을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

상자 - 안도현

상자 - 안도현 접기만 해서는 상자가 될 수 없어 접어 반듯하게 세워야지 모서리를 만들어야 하는 거야 종이의 귀퉁이가 뾰족해지는 거 그게 모서리잖아 네가 뾰족해진다고 겁내지 않을 거야. 너는 바깥에서 모서리가 되렴 나는 안에서 구석이 될게. 그러면 상자가 되는 거잖아. 상자 안에 처음부터 무엇이 빼곡 들어 있었던 건 아니야 우리가 상자가 되면 맨 먼저 허공이 들어찰 거야 가만히 있어도 배가 부를 걸? 상자에 가만 귀 기울여 볼래? 병아리 소리가 새어 나올지도 몰라 상자 가득 사과를 담으면 아, 그 애의 잇몸이 보일지도 몰라. ('화장지 - 유강희' http://blog.daum.net/yjmoonshot/4542) ※안도현 동시집 를 읽으니 '詩 같은 동시'가 많다. '상자' 동시에서 두 가지 진리를 발..

가장 받고 싶은 상 - 이슬

머리핀을 사러 팬시점에 갔다. 예전에는 형형색색의 방울과 디즈니만화영화 캐릭터 핀이 유행이었는데 그 사이에 멋진 한글로 쓰여진 핀이 나왔네? '예쁜 공주', '귀욤 공주', '예쁜 딸', '사랑해' 등등 파스텔톤 악세사리들이 즐비하다. 예전에 이라는 옛 드라마에서 '귀남(최수종)'과 '후남(김희애)'처럼 아들과 딸의 성차별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겠다. 오히려 '딸바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딸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세상이 되었다. 어제 한 뉴스에서 동시를 선보였다. 전라북도교육청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것이다. 작년 10월 전북 부안군 무덕초등학교 6학년 1반이었던 '이슬'양의 '가장 받고 싶은 상'이라는 작품이다. 243편이 출품된 동시 공모전에서 최고상을 받았다고 한다. 6학년 아이는 동시를..

나물 캐는 아기 - 이문구

소설가 이문구의 동시집에서 나물 캐는 아기 - 이문구 옆집 언니 친구들이 손에 손에 바구니 아기도 덩달아서 소꿉놀이 바구니. 노랑나비 흰나비 아기 가는 길라잡이 넘어지고 일어서고 서둘러도 꼴찌. 언니네 바구니엔 봄나물 한바구니 아기네 바구니엔 봄풀이 한바구니. 얼굴은 볕에 익어 햇덩이가 되고 두 손은 풀물 들어 풀포기가 되고. 한눈 팔면 신발 젖는 좁은 논두렁 그림자가 뒤에 오는 긴긴 한나절. 눈길마다 들녘에 아지랑이 가물가물 아기네 두 눈엔 졸음이 가물가물. (친구에게 빌린 이미지) 소설가 이문구 = 동시인 이문구 : http://news.joins.com/article/19065689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 이정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 이정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산다 자주감자가 첫 꽃잎을 열고 처음으로 배추흰나비의 날갯소리를 들을 때처럼 어둔 뿌리에 눈물처럼 첫 감자알이 맺힐 때처럼 싱그럽고 반갑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눈물겹고 흐뭇하고 뿌듯하고 근사하고 짜릿하고 감격스럽고 황홀하고 벅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운다 목마른 낙타가 낙타가시나무 뿔로 제 혀와 입천장과 목구멍을 찔러서 자신에게 피를 바치듯 그러면서도 눈망울은 더 맑아져 사막의 모래알이 알알이 별처럼 닦이듯 눈망울에 길이 생겨나 발맘발맘, 눈에 밟히는 것들 때문에 섭섭하고 서글프고 얄밉고 답답하고 못마땅하고 어이없고 야속하고 처량하고 북받치고 원망스럽고 애끓고 두렵다 눈망울에 날개가 돋아나 망망 가..